원전과 관련한 역사상 큰 사고는 TMI, 체르노빌 그리고 이번의 후쿠시마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과거 원전의 사고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일까?’ ‘과연 대한민국의 원전은 안전할 것인가?’라는 걱정은 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세 차례의 대형원전 사고는 피상적으로 동일해 보이지만 매우 커다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체르노빌에서는 노심이 완전히 폭발되기까지 사고발생 후 불과 30초가 걸렸고, TMI에서는 노심이 용융되는데 12시간 이상이 걸렸다. 반면 후쿠시마에서는 노심용융이 수일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에서는 최후의 방어를 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최악의 사고 확대를 방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의 경우는 원자로 내의 냉각수 보유량이 매우 많아 혹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게 진행돼 훨씬 유리하다. 방사성 물질의 유출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원전은 TMI의 경험을 반영해 수소폭발을 방지하는 설비를 갖추는 등 후쿠시마나 TMI보다 훨씬 안전한 격납건물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수만 명의 인명 피해와 정유공장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전대미문의 대형 자연 재해 속에서 그나마 원전사고를 TMI 수준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일본 원전의 안전성은, 사고가 진정된 후에 반드시 정당한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쿠시마의 사고는 우리에게 새로운 안전 목표를 제시해준다. 그것은 외부 충격이 이전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안전설비의 내구성이 보다 강화돼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원전의 장점을 유지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은 차분히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안전설비 내구성 강화돼야
일본은 우리나라와 매우 가까운 나라로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의한 방사성 물질 누출이 우리나라에 끼칠 피해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의한 방사선피해 경험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체르노빌에서는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막을 최종 장벽이 모두 파괴됐고 대화재로 인해 방사성 구름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데 반해, 후쿠시마에서는 최후의 방벽인 원자로 격납용기가 대량의 방사성 물질 누출을 막아주고 있다.
원자로 격납용기가 손상되는 경우라도 핵용융물은 원자로 주변에 흘러내리는 정도이지, 체르노빌에서처럼 대기 중으로 폭발적으로 뿌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후쿠시마의 방사성 물질 방출량은 체르노빌에 비해 매우 적으며, 설사 방사성 구름이 후쿠시마로부터 방출된다 하더라도 한반도까지 이동하는 동안 방사능 농도는 수천만 분의 일로 줄어들게 된다.
더구나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성 구름은 주로 태평양 건너로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방사성 구름이 우리나라로 온다면’ 하는 걱정이 많다. 정부는 시간별로 독도나 동해상에서의 방사능 농도를 감시하고, 방사성 구름의 이동을 미리 감시해 그 결과를 보도 자료로 배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방사능 재난 시 필요한 국민행동 요령을 알기 쉽게 작성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 역시 자극적이고도 흥미 위주의 기사를 쏟아내 국민에게 지나친 공포감을 심어주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조선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이경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