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에 원전폭발 위기까지 겹쳐 악전고투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엔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주 미국을 비롯한 7개 주요 선진국(G7)이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발등의 불길은 잡혔다.
그러나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무려 2천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는 상황에서 엔화의 일방적인 강세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환율이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적 기초체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피해복구를 위해 계속 엔화를 시장에 풀고 있다는 점에서도 약세가 예상됐었다.
하지만 이런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엔화 가치는 16년 만의 최고수준인 달러당 76엔 수준으로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먼저 꼽히는 것이 고베 대지진 당시의 학습효과다. 해외에 투자된 자산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지진 피해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회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금융회사나 일반 투자가들도 수익성이 유리한 신흥국 자산에 투자했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을 청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투기세력까지 개입함으로써 엔화의 강세를 부추겼던 셈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일본 경제를 위해서도, 세계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수출산업의 채산성 악화를 초래하여 결국 경제침체가 더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서히 회복조짐을 나타내는 세계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것이 분명하다.
핵심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제조업에도 원가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G7 국가들이 이에 대처하기 위해 서둘러 공동전선을 펼친 것도 그런 파장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한편으로는 이런 움직임 속에서 조속한 경제회복을 기대하는 일본 기업과 국민들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비록 지금은 곤경에 처해 있지만 기초체력은 아직 견딜 만하다는 신뢰감을 반영한다는 얘기다.
엄청난 재난에 맞닥뜨려서도 오히려 해외투자 자금을 피해복구와 경제회복에 돌리려고 국내로 들여가는 정신적 태세가 그것을 말해준다.
일본의 기술력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은 지진이나 쓰나미보다 훨씬 강하다는 증거다.
/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