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끼니꾸 드래곤’, 곱창집 이름이다. 주인은 태평양 전쟁 중에 팔 하나를 잃은 50대 중반의 김용길, 그의 ‘용’자를 따 드래곤이 붙는다.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일본 오사카의 재일 한국인 마을에 있는 이 가게가 무대다. 그리고 용길네 가족이 겪는 비극과 사랑이 언제 그렇게 빨리 지나갔나 싶게 지루한 줄 모르고 세 시간이 넘게 펼쳐진다.
재일 한국인 정의신의 이 작품은 일본이 지진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보았던 한일 공동제작 연극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 감동이 진했다. 한국과 일본 연기자들이 두 나라 말을 함께 쓰면서 일본 사회에서 변방의 존재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를 혼신을 다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꾸며진 무대 자체가 한국과 일본의 소통이고, 작품의 내용 또한 그렇다. 그러나 그 뿐만 아니었다.
용길은 전쟁 중에 아내가 죽고 나서 현재의 아내 영순과 만나 자기 딸 시즈카, 리카 그리고 그녀가 데리고 온 딸 미카와 함께 다섯 식구가 돼 함께 산다. 영순은 제주도 4.3 사건의 학살극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해온 여인이다. 둘 사이에는 아들 토키오가 생긴다. 그 아들이 이 연극의 해설자로 등장해서, 매일 떠들썩하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 오사카의 이 구질구질하고 초라한 삶을 원망하며 어떻게든 이곳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랬던 그 마을은 어느 날 철거당하게 된다.
다리가 불구가 된 언니 시즈카와 동생 리카가 한 남자를 두고 겪는 사랑의 엇갈림, 가수가 되려는 미카의 열정, 따돌림으로 상처 입는 토키오, 대학을 나왔지만 재일 한국인이라는 출신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리카의 남편 테츠오. 이들의 운명을 끌어안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용길과 영순.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철거, 강제이주. 딸들 가운데 하나는 북으로, 하나는 남으로 떠나고 하나는 일본에 남게 되는 가족의 이별.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마을은 사라지지만 돌아보니 가슴에는 너무도 그리운 고향으로 남는다.
벚꽃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무너진 마을을 떠나면서 용길은 말한다. “좋은 날이 될 것 같은 내일”이라고. 지는 벚꽃이 도리어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모든 이들에게 그 아프고 힘겨웠던 날이 어느새 그리움으로 남는 날이 오기를.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