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나 기업은 요즘 수중에 돈이 많다. 대만 출신의 홍콩 중원대학 교수 랑셴핑(郞咸平)의 저서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을 읽지 않더라도 이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외환 보유고가 엄청나다. 달러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 해도 3조 달러 이상의 자금은 듣는 사람의 귀를 먹먹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기러기 군단으로 불리는 화교들이 굴리는 돈이 3조 달러에 이른다. 중국 정부나 기업들이 손만 내밀면 낮은 금리에 만질 수 있는 자금이다.
이러니 기업들의 해외 인수, 합병을 뜻하는 저우추취(走出去) 행보가 활발하게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2010년 말까지의 누적 투자액만 2600억 달러에 이른다. 한 해 투자액만 600억 달러를 넘나든다. 지난 세기 말과 금세기 초까지 전력을 기울였던 투자 유치 정책인 인진라이(引進來) 전략이 무색하다.
PC 업체 레노보(중국명 롄샹聯想)가 독일 전자업체 메디온의 주식 36.66%를 매입, 사실상 인수했다. 투자 금액은 2억3100만 유로다.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레노보가 2004년 전략적 이유 때문에 미국 펜타곤이 끝까지 반대한 IBM의 PC 부분 인수, 합병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알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 연초에 일본의 NEC와 합자회사를 도쿄에 설립했다는 사실까지 상기시킬 경우 머리가 쭈뼛 서게 된다. 궁극적으로 NEC를 인수, 합병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탓이다. 레노보가 거대한 식탐을 이처럼 마음껏 과시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차오얼간이(超二趕一), 즉 업계 2위인 델컴퓨터를 넘어 휴렛패커드를 바짝 따라가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이 없으니 목표가 황당하지 않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예외 없이 레노보를 찾는 것도 이유가 있는 듯하다.
중국 정부는 메디온 인수, 합병을 계기로 주춤했던 저우추취를 더욱 독려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들리는 얘기로 가까운 한국에 대한 투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인식 역시 하고 있다. 연간 2억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 투자 비중을 늘릴 것이라는 얘기다.
반갑기도 하면서 부담스러운 뉴스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드는 의문은 한국 정부나 기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과연 중국의 행보나 전략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대기업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쌓아올린 곳간의 돈을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답은 부정적이다. 중국의 무서운 저우추취 전략에 비해 한국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무사안일에 가까운 것 같다.
/중국 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