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MT를 가면 자연스레 혼숙을 했었다. 말이 혼숙이지 대개 밤새서 술을 먹거나 그저 적당히 널브러져 토막잠을 자는 거였다. 그런데 자다 보면 어느새 남자동기나 선배가 내 옆에서 코를 골고 있는 그런 양상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간이 컸다 싶다. 그 중에서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MT가 하나 있는데 왜 그러냐면 그날 밤의 해프닝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는 멀리 지방으로 등산을 나왔는데 다음날 또 험한 산행을 해야 해서인지 술을 다들 많이 안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줄줄이 막대사탕처럼 대충 자리잡고 나란히 누워 불을 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삼십 여분 후. 코 고는 소리, 이빨 가는 소리 사이로 어떤 손의 감촉이 내 가슴팍을 더듬더듬 스쳤다. 그 일은 정말이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떻게 하려는 사이에 자신 없어 하던(?) 그 손은 자진 철수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신입생이었고 불과 18살이었고 그 상황에서 불을 훤히 키고 ‘누구냐!’ 하며 범인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불쾌함보다는 막막함과 당혹감이 앞섰다.
그렇게 어쩔 줄 모르고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질 무렵, 또 한 번 그 손(어쩌면 다른 손이었는지도)이 내 가슴 위로 뻗어왔다. 그때는 본능적으로 그 손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더 이상 그날 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에서 배운 공부내용은 지금 무엇 하나 기억 안 나도 그 날밤 그 해프닝은 어째 여태껏 기억난다.
모든 성적인 것은 복잡함을 동반한다. 개개인이 놓인 맥락만큼이나 “뭐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지” “남자는 근본적으론 다 똑같아” 혹은 “무조건 거세감이야” 등의 다양한 의견들이 사람 속내에선 저마다 존재한다. 그 탓에 지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쉬쉬하는 ‘데이트 성폭행(date rape)’ 사건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누군 “가슴 한번 만진 것 가지고 뭘 그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20년 넘게 가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생 사태가 아무쪼록 공정한 심판을 받길 바란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