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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가게로 일기'의 남과 여

남자는 열심히 구애의 시를 보낸다. 짧은 문장 하나로 적는 일본 특유의 와카다.

“두견새 울음 듣고만 있자하니 안타깝구려, 직접 마주앉아 소회나 풀고 지고” 답이 곧장 오지 않자 잇달아 보낸 와카다. “남들 모르게 하마하마 애타게 기다릴 적에 끝내 답장 없음에 쓸쓸한 이 내 마음.” “물떼새 자취 밀려오는 물결에 흔적 없듯이 답장 볼 수 없음은 더 큰 파도 탓인가?”

10세기 일본의 한 여성이 쓴 ‘가게로 일기’의 대목이다. 이 일기는 그녀가 남자로부터 구혼을 받던 때로부터 결혼 한 이후 남편이 다른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혼인관계가 깨진 이후의 세월까지를 담아냈다. 일처다부제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한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가게로’는 당시 일본어로 ‘아지랑이’를 뜻해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표현이라고 한다.

남자의 애절함은 여자의 마음을 결국 움직인다. 여인을 만나고 돌아간 뒤 남자의 글이다.

“이른 새벽녘 헤어져 가는 길에 보이는 하늘 애달픈 이 내 마음 이슬로 되고 지고.”

이슬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던지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다짐해두려 한다. 남편에게는 이미 첫 부인이 있다.

“이슬과 같이 덧없이 사라져갈 당신 마음을 부질없게도 믿는 나는 뭐란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혼인 이후 남자의 마음은 점차 전과 같지 않다. 남편의 발길이 때로 뜸해지면서 여자는 쓸쓸해한다.

“눈물로 지샌 소매 흠뻑 젖은 밤 밞아왔건만, 궂은 아침 하늘에 견디기 힘든 이 맘”

바로 온 답장은 자신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투다.

“당신 생각에 흠뻑 젖은 내 마음 하늘에 닿아 오늘 아침 하늘이 이리 궂은가 보오.”

그러고서는 곧 모습을 나타내었으나 또 자취를 감춘다. 저녁에 들리겠소 한마디 툭 던져놓고 사라진 것이다. 이후 밝혀지지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다. 여자는 와카 하나를 지어 읊는다.

“떡갈나무 숲 풀처럼 저물녘에 기다리네 못 믿을 당신 말에 눈물만 흘러흘러”

남자는 여자를 달래듯 답신을 보낸다.

“당신 보고파 꿈속에서라도 볼까 뒤집은 옷이 눈물로 축축한데 하늘조차 궂구나”

이미 못미더워진 남자에게 여인은 거침없이 그 기만의 속셈을 찌른다.

“나를 그리는 당신 맘속 불씨가 타고 있다면 어이해 옷자락이 젖은 채 있을소냐?”

이미 천년의 세월이 지난 글이지만, 그 속에 살아 있는 남과 여는 우리에게 여전히 묻는다. 마음 속 불씨의 진실에 대하여.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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