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허시에호 비즈니스석 1등석 보다 3배 '29만원'
중국대륙에 고속철도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다.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과 경제수도격인 상하이(上海)를 잇는 징후(京滬)고속철도가 시험운전을 끝내고 오는 28일 개통된다.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7월1일)을 즈음해 개통되는 징후고속철은 2008년 4월18일 착공된지 3년2개월10일만에 그 위용을 드러낸다. 1963년 1463㎞에 이르는 베이징-상하이 철도가 개통된지 48년만에 고속철로 거듭나게 됐다.
징후고속철은 총연장 1318㎞의 노선을 시속 300㎞ 열차로 4시간48분에, 시속 250㎞ 열차로 7시간56분에 주파한다. 그동안 10시간이상 걸리던 운행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열차명은 ‘허시에호’(和諧號 · '허시에'는 '조화'라는 뜻)로 일반석인 2등석 기준으로 300㎞ 열차는 555위안(약 9만2000원), 250㎞ 열차는 410위안(약 6만8000원)이고, 1등석은 각각 935위안(약 15만5000원)과 650위안(약 10만8000원)이다.
300㎞ 열차에만 있는 비즈니스클래스인 ‘상우(商務)’석은 2등석보다 3배나 비싼 1750위안(약 29만원)이다. 허시에호 시험운행 현장은 지난 16일 보도진에 공개됐으며 비즈니스석은 의자가 침대처럼 뒤로 젖혀지도록 설계돼 안락한 여행을 제공한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각종 기차표 할인정책을 도입해 이용객들에게 혜택을 줄 예정이다. 징후고속철은 인터넷을 통해 열차표를 예매할 수 있으며 실명으로 열차표를 구입해야 한다.
중국은 징후고속철의 완공으로 항공기에 이어 베이징과 상하이를 하루 경제권으로 묶음으로써 중국 경제, 특히 동부연안의 지역경제를 한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안정성 고려 최고시속 380㎞에서 300㎞로 낮춰
중국 고속철도는 국위선양이라는 목표와 함께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속도를 경신해 왔다. 징후고속철은 시험주행에서 시속 486㎞를 기록하며 500㎞대를 목전에 두는 듯했다. ‘380㎞로 개통, 400㎞이상으로’라는 운행목표도 추진해왔다. 그러나 개통을 앞두고 최고 운행속도를 시속 300㎞로 낮추는 한편 250㎞ 열차도 운행하기로 했다. 속도별로 운임도 다르게 책정했다.
중국이 ‘세계 최고’를 버리고 징후고속철의 운행속도 감속과 속도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징후고속철과 관련해 ‘귀족열차’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일각에서는 ‘약자에게 관대한 후진타오 정권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중국 철도사업의 부채규모는 약 2조 위안에 이른다. 고속전철의 건설과 함께 2007년 말부터 거의 3배로 급증했다. 자산의 50%를 넘는 규모로 확대됐다. 내년에는 자산의 70% 수준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술지상주의에서 국민의 생활수준과 경영문제를 우선 고려하는 정책으로 전환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중국 고속철은 2005년부터 건설을 시작해, 2010년 말 현재 전체 영업노선은 8358㎞에 이른다. 2012년에는 1만3000㎞, 2020년에는 1만8000㎞로 늘릴 계획이다. 2009년 12월과 2010년 12월 각각 개통한 우광(武廣)고속철과 후항(滬杭)고속철은 현재 세계 최고의 운행 속도 기록(시속 350㎞)을 보유하고 있다.
감속은 세계 최대 철도사업에 터진 ‘초대형 비리’ 여파?
중국은 지난 5년간 약 2조 위안을 철도에 투자했다. 철도사업은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대표적인 공공사업이었다.
징후고속철에 자국 기술을 제공한 일본과 독일의 기업들은 ‘안전 중시 주행속도’를 촉구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독자기술로 고속화했다’며 ‘350㎞’라는 속도에 집착해 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 철도사업에 터진 초대형 비리는 기술지상주의에 대한 시각 전환에 분기점이 됐다. 지난 2월 말 류즈진(劉志軍) 철도부장이 ‘중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실각됐다.
중국 고속철 사업의 상징과도 같았단 류즈진 철도부장은 고속철 입찰과 관련해 천문학적인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져 중국인들의 분노를 샀다.
지난 8년간 ‘세계 최고’를 캐치프레이스로 내걸었던 류즈진 부장의 실각과 함께 ‘말단까지 비리 투성이’ ‘안전은 뒷전인 채 건설만 서둘러왔다’ 는 등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런 과정에서 돌연 결정된 감속방침은 ‘공개적으로는 밝히기 어려운 불안요소가 발견된 것 아니겠는가’라는 의구심마저 갖게 하고 있다.
‘5S’ 고객서비스 선언…항공기처럼 미녀 승무원 고용
징후고속철 측은 개통에 앞서 안락한 서비스를 위해 ‘5S’를 선언하고 나섰다. ‘미소(smile)' '쾌속(speed)’ ‘표준화(standard)’ ‘성실(sincere)’ ‘만족(satisfy)’이 그것이다.
징후고속철은 이같은 5S서비스의 일환으로 미녀 승무원 400여 명을 고용해 승객의 편의를 돕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항공기 승무원을 연상시키는 이들은 19~22세에 키 165㎝, 전문대졸 이상의 용모 단정한 여성들로 이뤄져 있다. 해외 관광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영어, 일어 등 외국어 능통자도 선발했다.
이들은 에티켓과 매너, 안전의식, 비상시대응훈련, 열차내 고장을 대비한 정비 등의 교육과 베이징·상하이 인근의 관광명소에 대한 지식까지 습득했다. 중국 철도부는 “그동안 보지 못한 최상의 서비스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대동맥’…고속철 특수로 역사 주변 집값 ‘들썩’
징후고속철 역사는 모두 24곳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징후고속철 개통이 임박하면서 고속철 역사가 있는 도시의 부동산에 투자자들이 몰려 들고 있다. 중국 당국의 규제 강화로 전국의 부동산 경기는 한풀 꺾였지만 징후고속철이 통과하는 도시들은 ‘고속철 특수’ 덕에 투자 열기가 뜨겁다는 것이다.
징후고속철은 베이징, 텐진(天津), 상하이 등 3개 직할시와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장쑤(江蘇), 안후이(安徽) 등 4개성을 통과한다. 통과지역의 인구는 중국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고 GDP는 40%를 차지할 정도다. 말그대로 ‘중국의 경제 대동맥’이다.
현지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고속철이 개통되면 유동인구가 늘고 물동량도 많아져 지역 경제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징후고속철 개통 수혜지역으로 꼽히는 역사 주변의 부동산에 구매자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의 중간지점인 산둥성 지난(濟南)시는 향후 고속철 분기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고속철 역사에서 1.5㎞ 거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는 최근 분양에 나선지 며칠 사이에 매물이 모두 소진됐다. 2년 전 ㎡당 4000 위안에 불과했던 집값도 최근 6400 위안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독일 일본 등지서 기술도입…이제는 선진국 '게 섯거라'
징후고속철에 투입될 ‘허시에호’는 일본,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일부를 수입하고 기술을 구매한 뒤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고 소화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도호쿠신칸센(東北新幹線)의 ‘하야테’를 근간으로 한 기술을 수출했다. 가와사키중공업 등 일본컨소시엄이 8량60편성을 수주했다. 고베에서 만든 3편성을 수출하고, 6편성은 부품을 수출해 중국에서 조립했으며, 나머지는 기술을 제공해 현지에서 생산했다.
독일의 시멘스사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수주했다.
중국은 각국에서 구매한 기술을 바탕으로 자력으로 차량제조를 추진, 이제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시장의 수출경쟁 상대로까지 급성장했다.
맹렬한 기세로 선진국들을 추격하고 있지만 아직 베어링과 브레이크 관련 부품, 전기시스템 계통 같은 ‘핵심부품’은 일본과 유럽에서 상당량을 수입하고 있다. 일본 관계자에 따르면 그 비율은 ‘30% 전후’라고 한다.
중국정부는 완전한 국산화를 목표로 삼아 고속철 관련산업을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지정하는 한편, 세금우대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같은 노력은 고속철의 하드웨어 부문에서 괄목할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티켓 판매시스템, 운행관리, 역사의 활용 등 고속철 운영 측면에서는 선진국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