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다.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었는데 본래 내성적이다 보니 드러내진 못하고 속으로 한동안 끙끙 앓아왔다. 그러다가 서른 즈음부터 일단 내가 살고 봐야겠다 싶어 싫은 건 싫다, 표현하고 가급적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며 속 편히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사람을 한 번 싫어하게 되면 그 미움의 감정이 꽤 격해지는 편이다. 이성적으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애쓰거나 용서하고 말고를 떠나 그냥 그저 생각만 해도 괴롭고 불쾌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도 싫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친한 사람도 덩달아 싫어졌다.
옹졸하기 짝이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런 호불호가 강한 성격은 남들에게도 호불호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인 데, 그건 또 못 참고 가급적 모두에게 사랑받길 바라니 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패인가.
이렇게 소인배로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트위터의 세계를 알아가면서 또 한번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한 다리 건너 어찌어찌 서로를 다 알았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던 사람들과 친하기도 했다. 또 내가 좋다 생각하던 사람들이 너무 끔찍해지기도 하는가 하면 안 좋은 선입견을 지녔던 사람들의 의외의 좋은 측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물론 어느 순간 그것들은 또 확 뒤바뀌기도 했다. 한 마디로 기존의 모든 호불호는 일관성을 잃어갔다. 사람 보는 눈? 그게 다 뭐냐 싶었다. 피식, 어느 순간 웃음만 났다. 그래, 그냥 모두 다 사랑하리. 뭐 누군들 완전하냐. 나도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 포용하는 큰 그릇이 되자.
그런데 누가 또 태클을 건다.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호불호’ 성격에서 ‘호호호’가 되고자 하는 나를 비웃는다. 평화로운 대인배가 되고 싶다가도 그렇게 착해지는 나 자신을 뭘 그리 아까워하는 걸까. 누군가를 극심하게 좋아하거나 혹은 증오하는 격한 감정 역시도 마음 한구석에선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다니, 이제 곧 명실상부 마흔 살 어른인데도 여전히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