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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꿈을 잃은 노년의 군상 진한 파동

조용한 연극으로 세계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히라타 오리자의 신작 ‘잠 못드는 밤은 없다’가 공연 중이다. 배경은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일본인 리조트의 휴게실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은퇴 후 골프나 산책 등의 소일거리로 말년을 조용히 보낸다.

일본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려온 사람들의 노년은 여유롭고 안정돼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에는 무언가 중요한 요소가 결핍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의지다. 히라타 오리자는 그것을 꿈의 결핍으로 본다. 꿈을 해석하는 말레이시아의 세이지 부족이 종종 언급되는데, 더 이상 꿈꾸지 않고 욕망하지 않은 그들에게 세이지 부족의 능력은 불필요한 것이다.

리조트 휴게실의 풍경을 통해 작품은 경제 발전의 일선에 섰던 세대들이 은퇴 후 가지는 일본에 대한 애증을 드러낸다. 병이 들었지만 일본에 들어가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겐이치(정재진), 은퇴 후 여생을 리조트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아키라(최용민), 남편을 따라 리조트로 와 아무런 취미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치즈코(서이숙). 특히 ‘세상 어디로 숨어도 끝까지 일본은 따라 온다’는 치즈코의 독백에는 일본에 대한 진한 애증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 열심히 보았던 TV 프로그램인 ‘하리마오’를 추억하면서도 결코 일본에 가고 싶지 않다는 그들은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는 히키코모리와 닮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긴장감을 상실하고 조용하게 리조트에서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은 럭셔리한 삶을 향유할 뿐 세상과 등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리조트 사람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히키코모리 미쓰루를 등장시켜 그와 리조트 사람들의 삶을 오버랩시킨다.

일본을 위해 삶의 전부를 바친 사람들, 그러나 이제는 일본을 거부하는 그들은 비록 몸은 말레이시아에 있지만, DVD로 일본 방송을 보고, 멀지 않은 곳에 일본인 의사가 있는 병원을 두고, 일본 양식을 지키며 리조트 생활을 한다.

이것이 이들의 비극이다. 일본을 증오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 일본을 벗어나 작은 일본을 만들고 사는 그들은 벗어날 수도 그렇다고 속해 있을 수도 없어서 정지해 있는 군상들이다.

지극히 일본적인 작품이지만 연출가 박근형은 한국적인 대사와 감성으로 풀어내려고 애썼다.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편하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연출과 배우 스스로가 낯선 옷을 입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다. 다음달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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