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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천지에 술맛이 배어 있구나

강원도 정선의 여름 밤 하늘은 맑고 빛났다. 도시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은하수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 하늘 아래로는 산들이 둘러친 사이로 물길이 도는 하회(河回)의 굽이굽이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별빛과 물소리가 그걸 보고 듣는 이를 순간, 신선으로 만든다. 막개발이라는 폭력에 가까운 삽질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풍경은 기특하고 고맙다.

오랜 세월 여러 사연들을 숱하게 실어 나르고 실어왔을 시골 역사는 이제 낡고 작은 간이역의 매력으로 남아 있다. 그건 어느새 풍화를 겪은 유적이 되었다. 근처 허름한 식당에 들어서니 구부정한 할머니가 손님을 맞이한다. 이름도 기이한 메밀 콧등치기를 시키니 메밀가루를 직접 반죽해 칼국수처럼 썰어 내놓으신다. 국수나 국맛 모두가 일품이다. 장맛 역시 놀랍다. 자연의 냄새와 가까운 음식일수록 우리 몸이 기뻐하는 것은 언제나 진리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보니 사방에 아카시아가 하얗게 널렸다. 강원도 산길에 백색의 달콤한 향기가 이리도 진하게 퍼져 있는 걸 이제 알았다는 게 깨나 신기한 발견인 것처럼 여겨진다. 언젠가 시인의 산방에서 얻어 마신 아카시아 술이 떠오르면서 아카시아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천지에 술맛이 배어 있는 것인가? 자연은 그렇게 계절마다 다른 술을 담아 보는 이들을 취하게 하는구나.

정선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아우라지’가 있다.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중봉산에서 출발한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진다’고 해서 ‘아우라지’란다. 이곳은 서울까지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 터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각처에서 온 이들이 노래자랑도 하고 사랑도 하다가 임을 그리워하는 아리랑이 자꾸 생겨났단다. 그런 아리랑을 부르는 뱃사공의 목청이 좋았을 것이다. 정선 아리랑 애정편의 발상지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서로 인연이 없던 물길이 하나가 되는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바람과 태양과 별빛, 그리고 물속에 깃든 자연의 기운이 우리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걸 가볍게 여기는 세상은 스스로를 폐허로 만들고 있는 중임을 모른다. 그걸 그나마 막아내고 있는 강원도의 힘이 자랑스럽다. 아카시아 술이 익을 때쯤 되면 이번에는 봉평의 메밀꽃이 한참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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