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아트센터의 ‘인인인’ 시리즈는 현대 동북아 3국 사람들의 삶을 주목한 기획이었다. 마지막 기획 작품인 고선웅의 ‘인어 도시’에서는 현대 한국인들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인어 도시’의 배경은 한 달 내내 비가 내리는 호스피스 병실 7002호.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삶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버텨내는 곳이다. 병자 중 한 명은 저수지로 낚시를 가서 아구에 물리고 기이한 행동을 하고, 비 내리는 창문 밖에서는 유령 같은 여인이 문득문득 병실 안을 들여다본다. 이윽고 그 여인이 병실로 들어와 자신이 인어라고 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존재들과 한국인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스토리만 보면 공포 판타지물에 해당하지만 이곳 병자들에게서는 한국적인 아픔이 느껴진다. 남편 뒷바라지에 청춘을 바친 중년 부인은 심한 의부증을 앓는다. 평생 헌신만 하고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받지 않는 전화를 지독히 걸어댄다. 악만 남은 그녀의 분노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 산업화의 모습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해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쫓겨나야 했던 노동자들의 분노와 그 여인의 분노가 겹쳐진다.
고물상을 하면서 자식만큼은 훌륭하게 키우고 싶었던 염씨. 유학까지 보낸 자식은 아비의 바람과는 달리 외로움에 자살을 하고, 수산시장 횟집 주인 정씨는 자신에게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와 색안경으로 자신의 실체를 감추려 한다. 지금의 자신이 아닌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 오로지 성공, 발전이란 미명하에 달려온 사람들, 이들은 도달하고 싶은 곳이 분명치 않지만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무작정 달려왔던 우리 아버지 세대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목표 없는 욕망이 아구와 인어를 불러냈다. 아구는 바닷물고기이자 걸신들린 귀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구는 일종의 그들의 목표 없는 욕망의 은유인 셈이다.
‘인어 도시’는 현대 한국인의 자화상을 비현실적 공간에 던져놓음으로써 그들이 가진 상처와 아픔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앞두고 보이는 삶의 집착, 그리고 한국은 빠른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한국인들은 빠른 성장에서 기인한 목표 없는 욕망을 늘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인어 도시’는 그런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11일까지 두산 아트센터 스페이스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