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9년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맏아들의 기일에 가족사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면서 사랑과 원한을 어떻게 감당해나가야 하는지 조명한 작품이다. 가족이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이해할 것만 같은데 도리어 너무 잘 알아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 작품보다 2년 앞서 그가 만든 ‘하나(꽃)’ 역시 가족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가족의 구성에 반드시 혈연이 앞서지는 않는다 것을 보여준다. 마치 인연이 서로 엇갈릴 것 같은 이들이 하나가 되는,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18세기 일본의 고뇌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도쿄라는 이름으로 바뀐 에도는 막부의 쇼군(將軍)이 지배하고 있는 시절, 변방의 처지였다. 무대는 판자촌이 밀집한 뒷골목의 작은 동네. 사람들은 언제 그 뒷골목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갈망한다. 그곳에 소자에몬이라는 이름의 한 사무라이 청년이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복수하기 위해 들어선다. 하지만 그의 검술은 보잘 것 없었고, 심성도 사무라이에는 걸맞지 않았다. 게다가 도쿠가와 막부의 후반, 전쟁은 없고 사무라이는 칼만 잡은 비생산적 계급으로 무위도식 인생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막부는 껍데기 같은 권위에만 사로잡혀 영주가 기르는 개도 백성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어이없는 일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무사의 철학은 여전히 시대를 지배하고 있어서 원수를 갚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라고 믿는다. 결국 찾아낸 원수는 이미 아이가 있는 한 과부와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소자에몬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마을이 더는 복수의 무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과 연극을 꾸며 겉으로는 원수를 갚은 것처럼 하고 마을의 평화와 행복을 지켜낸다. 물론 이 청년도 사랑과 함께 가족을 얻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폭력을 권력으로 여기는 험난한 시대와 끔찍할 정도로 비참한 현실 앞에서 마을 사람으로, 가족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거품이 꺼진 이후 겪은 경제난으로 가족과 사회적 연대감이 해체되어가고 있는 일본사회의 현실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읽힌다. 진창에서 “꽃”을 피우고 싶은 거다. 이게 필요한 것이 어디 일본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