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봉될 ‘이끼’는 가장 ‘강우석답지’ 않으면서도, 가장 ‘강우석스러운’ 영화다.
한국 영화계의 ‘파워맨’ 강우석 감독이 변신을 독하게 마음먹고 달려들었지만, 끝까지 원래의 성향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존의 ‘강우석표’ 영화와 다른 흔적은 선과 악을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등장 인물들과 한결 윤택해진 화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의절한 아버지(허준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캐내려 덤벼들지만, 그 이유가 때늦은 효심 때문인지 자신의 원초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욕망 때문인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유해국(박해일)과 전체주의적 유토피아의 냉혹한 독재자 같으면서도 인간적인 연민의 정까지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이장 천용덕(정재영) 모두 흑과 백 이분법적인 사고로 판단하기에 다소 버거운 캐릭터들. 한마디로 캐릭터를 ‘읽는’ 맛이 늘어났다.
그동안 강 감독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받아온 공을 들이지 않은 듯한 미장센은 상당 부분 개선됐다.
촬영은 깊이가 넘치고, 조명은 당위성이 생겼다. 또 음침한 분위기의 마을 세트는 그 자체로도 살아 숨쉰다.
한편, 배우들의 연기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예상치 못한 유머를 군데군데 심어놓는 습관은 여전해 보인다.
출연진 모두는 깨나 유장한 극의 흐름에 긴장과 이완을 골고루 불어넣는다. 속도감이 넘치고 호흡이 분명한 연기를 선호하는 연출자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응한 결과다.
이 가운데 천용덕의 오른팔 김덕천 역의 유해진과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영지 역의 유선은 재발견이란 상찬이 아깝지 않다.
유해진은 웃음 속에 감춰진 광기를, 유선은 열린 결말의 불길함을 몸 전체로 각각 뿜어내는 재주를 과시한다.
이제는 국내에서 멸종되다시피 한 중견 감독이 지천명의 나이에 제2의 도약을 이뤘다는 점에서,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이야기를 중후하지만 결코 잰 척하지 않고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올해의 문제작이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
끝으로 원작 만화와의 유사점 혹은 차이점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원작을 미리 본 사람이나, 안 본 사람이나 감상에 전혀 무리가 없다. 단 극장 문을 나설 때면 만화가 저절로 궁금해지는 마음은 막기 어렵다. 1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