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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종잣돈 300냥으로 거부된 박승직

두산의 창업주인 박승직은 등짐을 지고 전국 장을 떠돌던 보부상이었다. 그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에서 송파나루가 가까웠기 때문에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았다.

송파나루 시장을 드나들면서 그는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겠구나”하고 다짐하였다. 장사를 하려면 종잣돈이 있어야 했는데 이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동향인 민영완이 해남군수로 부임하면서 성실한 그를 데려갔다. 그는 해남군청에 근무하면서 300냥을 모아 집으로 송금하였는데 이 돈이 종잣돈이 되었다.

2006년 8월에 박용만 회장을 비롯하여 두산 임직원 50여 명이 서울 종로 배오개에서부터 해남까지 천릿길을 도보로 행진한 것은 창업주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행사였다.

박승직이 처음 시작한 장사는 석유를 사서 되로 파는 장사였다. 그의 장사가 전환점을 갖게 된 것은 석유를 사러 가는 과정에서 다리가 아파 쓰러져 있던 가죽장사를 도와준 일이다. 도움을 받은 가죽장사는 그에게 전국의 가죽을 모아 도매상에게 넘기는 장사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다음에 눈뜬 것이 면직물 장사였다. 10여 년의 장사 끝에 박승직은 배오개의 거상이 되어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설립 초기에는 포목점을 위주로 하였으나 그 뒤 업종의 다양화를 추구하여 미곡·식염, 화장품 등을 판매하였다.

쇼와기린맥주회사의 설립에도 참여하였는데, 동양맥주회사의 전신이다. 그는 나라가 망하자 동대문의 상권을 지키기 위하여 경성포목조합을 결성하여 일본 상인에 대항하였다. 박승직상점의 이색 기업활동은 박가분을 제조하여 판매한 일이다. 박가분은 이 집안의 며느리 정씨가 재래식 화장분을 기업화한 것으로 선풍적 인기로 판매되었으나 1930년대부터 일본 고급 화장품에 밀려 폐업하였다.

박승직이 거상이 된 것은 운도 누군가의 도움도 아닌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부지런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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