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의 비디오·DVD 대여점에 가면 박찬욱 감독의 걸작 ‘올드보이’가 대부분 ‘익스트림 무비(Extreme Movie)’로 분류돼 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관람이 다소 불편한 ‘센 영화’로 취급되고 있다는 얘기다. 대다수의 영국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음식으로 꼽는 산낙지 탓이다.
극 중 오대수(최민식)가 산낙지를 통째로 대가리부터 우적우적 씹어 삼키는 장면이 200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당시, 일부 서양 관객들이 구토를 참지 못하고 극장을 뛰쳐나갔다는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낙지의 사촌 형님뻘인 문어가 요즘 ‘급호감’이다. 2010남아공월드컵의 숨은 MVP로 선정된 독일의 족집게 점쟁이 문어 파울 덕분이다.
파울의 신통방통한 예지력을 지켜보며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파울을 한국에 모셔와, 최근 김미화의 블랙리스트 발언과 관련된 진실을 캐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동안 웬만한 외부의 비판에는 꿈쩍도 안 하던 KBS가 리스트 건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출연 금지자 명단까지 낱낱이 공개하는 등 반박 자료를 마구 쏟아내고 있다.
명단 속 당사자로서는 KBS의 이번 명단 공개가 마치 부관참시 내지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위배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어쨌든 다 좋다. 다시 김미화의 발언으로 돌아가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KBS의 주장, 솔직히 믿고 싶다. 무엇보다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잘 안 된다. 발언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각계각층에서 나오고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강자임에도 발빠른 법적 대응부터 해묵은 명단 공개까지 호들갑스럽게 대응하는 KBS의 모습이 당당하기보다는 왠지 쫓기는 듯해서다.
주장과 주장이 대립하지만, 진실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기 일쑤인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존재가 파울인 것 같다. 파울이 자신의 주 종목인 경기 결과 알아맞히기 이상의 신기를 발휘해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