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뮤지컬 황금기를 넘어 70년대로 들어서면 빙하기가 시작된다. 화려하던 대형 뮤지컬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고, 대중들은 값싼 TV 앞으로 몰려든다.
시대가 암울할수록 예술은 빛이 난다. 컨셉트 뮤지컬 ‘컴퍼니’, 사회적인 색채가 가득했던 뮤지컬 ‘시카고’와 ‘카바레’, 그리고 혁신적인 뮤지컬 ‘코러스 라인’이 모두 70년대에 만들어졌다.
75년 뛰어난 안무가인 마이클 베넷이 연출과 안무를 맡아 만든 ‘코러스 라인’은 그해 토니상에서 8개 부문을 수상하고 15년간 6000회가 넘게 공연됐다. 마이클 베넷은 코러스들에게 각자의 삶을 이야기해보라고 해서 그 내용을 기초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속에는 코러스 출신이었던 안무가 잭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아니, 모든 코러스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코러스들은 전체가 하나인 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스타들이 돋보이도록 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코러스들이 자신들만이 가진 아픔과 사랑, 상처를 털어놓는다. 자신이 게이인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던 유대인, 아름다웠던 어머니를 학대했던 아버지를 미워했던 여배우, 작은 체구 때문에 늘 어린 배역을 맡지만 실제로는 서른이 넘은 동양 배우, 춤은 자신 있지만 노래만 하면 바보가 되는 댄서, 그들이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자신만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코러스 라인’은 한 번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코러스들 한 명 한 명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안쓰럽고 때론 독특한 매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짠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렇게 무대 앞에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가 바로 일거리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코러스들 각자가 생각하는 배우도 다양하다. 춤과 무대가 좋아서 코러스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당장 내일 일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코러스가 있고, 언젠가는 스타가 될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코러스로 나이만 들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코러스도 있다. 그들의 아픔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늘 내일을 불안해하는 많은 소시민을 공감하게 한다.
코러스 댄서의 이야기인 만큼 춤만큼은 충분한 볼거리를 보여준다. 특히 화려한 황금 의상을 입고 라인 댄스를 추며 부르는 마지막 곡 ‘One’은 다르지만 하나인 코러스들을 위한 찬가이다. 다음달 22일까지 코엑스아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