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레퓨지’에서 이자벨 카레의 불룩한 배를 보고 특수분장이라 착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레퓨지’는 실제 임신한 배우를 주인공으로 찍은 드문 영화이다.
일반적인 영화처럼 각본이 나오고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임신한 배우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카레의 임신 소식을 들은 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종에겐 각본을 따른 드라마 자체보다 그 드라마를 찍는 과정 자체가 더 매혹적이었을 수도 있다. 카메라와 임산부의 부푼 배 사이의 에로틱한 긴장감만 살아 있다면 무슨 이야기여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카레가 연기한 인물은 무스라는 약물중독자이다. 무스는 남자친구 루이와 함께 약물을 하다 그만 약물과용으로 남자친구를 잃게 되는데, 알고 봤더니 그녀는 이미 루이의 아기를 임신한 상태였다. 무스는 바닷가에 있는 별장에 은닉하고, 그런 그녀를 루이의 동생 폴이 찾아온다.
이 정도의 줄거리만 읽으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여자주인공은 아마 아기를 낳으면서 약물중독에서 해방되고 보다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남자친구의 동생이라는 남자는 여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질 것이다. 이 정도면 아기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되고 관객들도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오종은 이 단순한 공식을 그대로 따를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아주 도전적인 무언가를 만들 생각도 없어 보인다. ‘레퓨지’에는 오종 영화의 익숙한 장치들이 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심, 바다, 동성애자 남성. 그렇다. 폴은 동성애자이고, 이 정보는 영화 도입부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밝혀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오종의 개성이 들어가면 전통적인 결말을 기대하긴 곤란하다. ‘레퓨지’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공식적인 이야기의 틀을 따르고 있지만 그 기대는 종종 엉뚱한 방향 전환으로 깨진다.
하지만 진짜 임산부의 몸과 정신을 끌고 영화를 찍은 모습에서는 특수효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진솔함이 느껴진다. 18세 이상 관람가.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