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는 배고픈 여우가 포도를 따려다 실패하고 포도를 나무라는 걸로 끝난다. 줄거리는 이렇다. 우선 여우는 배가 고팠다. 그런데 보기에도 꽤 탐스런 포도 송이가 포도나무 가지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웬 떡인가 하고 팔짝 뛰어올랐지만 여우치고는 공중제비 실력이 별로였는지, 실력은 좋은데 포도 송이가 너무 높이 달려 있었는지 힘만 빠지고 소득은 없었다. 그 바람에 중간에 있던 나뭇가지들이 꽤 부러졌을 거다.
여우가 뛰어오르기를 잘하는 것은 기원전 6세기 이솝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거 여우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포도 따기에 성공하지 못한 여우에 대해 우화는 이렇게 전한다. “여우는 결국 더 이상 시도를 포기하고 아주 품위 있는 척하면서, 포도 따위야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하는 표정을 짓고는 ‘이 포도 송이들이 꽤 잘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알고 보니 신 포도였어’하고 숲 속 저편으로 어슬렁거리며 멀어져갔답니다.”
더 생각해보면 여우는 쥐나 다른 작은 짐승들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이다. 호랑이가 허기지다고 포도를 따 먹는다면 그 꼴이 기가 막힐 텐데, 그런 맹수는 아니지만 여우라도 아무리 배고프다고 포도를 따 먹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고개 들기 어렵게 되지 않겠는가? 가만히 매달린 것을 못 따낸 것도 그렇고, 여우가 포도를 탐한다는 것도 밖에 알려지면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들이다. 그래서 이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자 최우선으로 여우가 챙기려 한 것은 품위였고, 포도 같은 것이야 본래 관심이 없었다는 표정으로 안면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그 잘 익은 포도는 신포도로 바뀌고 말았다. 헛소문 내는 거다. 포도의 입장에선 웃기는 일이다. 이 여우는 포도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서 그 욕심을 제대로 채울 길이 없자 자기 속셈은 은폐하고 자기 체신 살리겠다고 포도를 비난한다. 왜 갑자기 이 우화가 생각났을까? 장마철 물난리가 난 강들을 보면서 괜히 건드려 놓고는 이제 무슨 소리를 할까 궁금해진다. 능력도 안 되는 데 팔짝 뛰어오르다가 원하는 성과는 거두지 못하자 엉뚱한 소리나 하는 여우는 보고 싶지 않다. 여우야, 여우야, 부디 다음에도 포도 따려 들지 마라. 괜히 그러다 포도나무만 망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