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북한은 우리의 영원한 양가적 대상이다.
이데올로기의 벽을 뛰어넘는 한 핏줄의 위력 때문일까? 밉다가도 안쓰럽고, 안쓰럽다가도 미워진다.
북한을 지구상 모든 국가의 적으로 묘사하기 일쑤인 할리우드 영화를 관람할 때는 특히 더하다. ‘007 어나더데이’에서 제임스 본드가 변신 괴물처럼 그려진 북한군 출신 악당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신나게 박수를 치다가도 문득 ‘저건 아닌데…’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29일 개봉될 ‘솔트’에서도 북한은 주인공의 행적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솔트(앤절리나 졸리)는 북한에 스파이로 잡입했다가 체포된 뒤 풀려나는데 도움을 준 남자와 결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이 간나 XX” 등의 북한 사투리 욕설을 제대로(?) 구사하는 북한군들이 속옷 차림의 졸리에게 혹독한 물고문을 가한다.
오래전 미국으로부터 ‘불량국가’ 혹은 ‘악의 제국’으로 낙인찍힌 북한이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부정적인 측면으로 다뤄지는 것을 두고 좋다 나쁘다를 쉽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극적 재미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대통령마저 패륜적인 살인범으로 만들어버리는(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앱솔루트 파워’) 그들에게 “당신들의 영화에서 북한은 왜 항상 그 모양이냐”며 이미지 개선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게다.
그럼에도 뒷맛은 썩 개운치 않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북 관계 등 현 정국과 관계없이, ‘그런가 보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가기에는 왠지 씁쓸하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기만 하다.
공교롭게도 ‘솔트’를 감상한 날 저녁, 지상파 방송 3사의 톱 뉴스는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는 소식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일행이 힘자랑이라도 하듯 기세등등하게 판문점을 둘러보는 광경을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 북한군의 눈빛이 가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