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심장부인 뉴욕이 최악의 정전사태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은 지난 2003년 8월. 가뜩이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무렵이었다. 신호등이 꺼져 도로는 차량으로 뒤엉켰으며, 고층 빌딩과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운행이 중단됐다. 여름철 전력수요 급증으로 인해 과부하가 걸리면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뉴욕망은 아니었다. 오하이오와 미시간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전력이 끊겼으며, 전력망이 연결된 캐나다의 토론토, 오타와 일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때의 블랙아웃으로 인한 기업들의 전체 생산 차질액이 460억 달러에 이를 만큼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미국은 이에 앞서 2000년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제한송전의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 한 해 동안 발동된 제한송전 조치가 무려 30회 가까이에 이른다.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예비율이 위험수위에 이르자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치였다. 허리케인이나 눈사태로 송전선로와 전신주가 쓰러져 빚어지는 정전과는 성질이 다르다. 지난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이래 원전건설을 포기함으로써 전력 공급이 제자리에 맴도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번 여름에도 미국 곳곳에서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전력소비가 급증하면서 정전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겪어온 필리핀, 브라질, 베트남, 쿠바, 베네수엘라, 남아공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들어 산업 생산량 증가에 따라 전력이 그만큼 많이 소요되지만 공급이 거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력 공급의 80%를 차지하는 화력발전의 연료인 석탄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라는 소식이다.
제한송전의 위기에 있어서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 우려가 제기되어 왔지만, 이번은 특히 엄살치레로 넘어갈 사정이 아닌 것 같다. 불볕더위가 지속되면서 최대 전력수요가 자꾸 경신되는 등 전기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뎬무’ 태풍이 불어와도 후텁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다음주가 최대 고비라고 하니 은근히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