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를 맞아 시골집에 갔다. 가족이 함께 모여 SBS 일일드라마 ‘세 자매’를 시청했다.
처음 보는 드라마인지라 도무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언쟁을 벌이는 여자 둘이 친구인 것 같기도 하고 인척인 것 같기도 했다. 내용은 이랬다. 친구였던 이들이 올케·시누이가 됐고, 다시 동서지간으로 만난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참으로 해괴망측한 X족보도 다 있다’ 싶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휴가 기간 중 오랜만에 챙겨 본 지상파 3사의 일일 드라마들 대부분이 이처럼 배배 꼬인 인간 관계를 기본으로 줄거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로 사랑하던 의붓남매(그나마 다행이다!)가 사위와 장모로 엮이는가 하면(MBC ‘황금물고기’), 버렸던 아이를 되찾기 위해 여자와 그의 가족이 어렵게 새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는 남자에게 정략적으로 접근하는(KBS1 ‘바람불어 좋은 날’) 등 상식적인 형태의 가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의 일반화 현상이 굳어졌다.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 해도, 요즘의 몇몇 드라마는 단언컨대 ‘쓰레기’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제작진은 시청자가 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는 공급이 수요를 지배한다. 독과점이나 다름없는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몇 개 되지 않는데, 도대체 뭘 고른단 말인가?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중견 탤런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남는다. 출중한 연기력에도 드라마 출연을 꺼리는 이유로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가 너무 많은 탓”이라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출연하는 또래 동료들도 돌아서면 자기네 드라마를 욕하기에 바쁘다”고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들마저 비난하는 ‘막장 드라마’의 일반화, 제작진과 시청자 등 모두의 자정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