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물소리가 맑다. 마치 밤새 비가 오는 듯하다. 후끈거리는 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물줄기가 가슴에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사방이 트인 창문으로 드나드는 일이 자유로워진 바람이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방안을 채우고 홀연 사라진다. 역시 이름대로 ‘청풍’(淸風)이다. ‘충주호’를 다른 이름으로 ‘청풍호’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곳 한 작은 마을 학현리는 바로 얼마 전 ‘제천 음악 영화제’가 열렸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여름 휴가철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고 주변 경관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진 채 신선의 기운을 묵묵히 뿜고 있었다.
학현리 인근에는 물테리 마을이 있다. 오래전 충주호 수몰지역 주민들이 이주한 곳이다. 이름도 예쁘다. 물이 테를 둘러 생긴 마을이라는 뜻인데, 그곳에 예기치 않게도 작고 아담한 카페가 ‘홍민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눈물을 닦아요, 그리고 날 봐요”의 가수 홍민이 노래하는 카페다. 60대 중반 초입이건만 아직도 젊어 보이는 그의 노래에는 요즈음 듣기 힘든 우수가 담겨 있다. 지인 몇이랑 홍민 부부와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 그 시절의 노래는 가사도 따라 부르기 쉽고 가락도 굽이치는 멋이 있어 감성에 자연스럽게 휘감겼던 것을 모두 공감한다.
비봉산 정상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모노레일을 타고 오른다. 그곳에 올라 보는 청풍호 주변의 경관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절경이라고 아는 이마다 입을 모은다.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각도를 모노레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소박한 모노레일이 숨도 몰아 쉬지 않고 열심히 기어오르고, 이윽고 활공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아, 이런 곳이 있다니 하고 연신 감탄을 멈추지 못한다. 청풍호가 생각보다 큰 데다가 자연스럽게 굽이치는 물길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아담한 마을, 논과 밭 그리고 엷은 구름이 살며시 내려앉은 산들이 어울려 유화, 수채화 그리고 수묵화를 한자리에서 다 보는 기쁨을 안긴다.
누구도 손대지 않은 계곡, 사람이 가로막지 않은 물길,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바람, 가슴에 잠겨드는 노래, 눈높이를 다르게 만들어 주는 정상, 강처럼 흐르는 호수, 그 옆에 터를 잡은 작은 마을들과 구름이 쉬어 가는 산들.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경 그 어디에도 직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