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경 전남 나주에 살던 강릉 함씨 일가는 새 정착지를 찾아 헤매던 차에 남도의 보물 같은 다도해에서 섬 하나를 발견했다.
하조도에서 동남쪽으로 7㎞ 떨어진 면적 4.08㎢의 작은 섬이었다. 경관도 좋았다. 해안 대부분이 암석으로 남쪽 해안의 높은 절벽과 해식동이 절경을 이뤘다.
보기엔 좋았다. 하지만 사람 살기엔 척박했다. 그나마 뭍에서 드나들기 좋은 북서쪽 해안을 앞에 두고 마을을 만들었지만 바람이 문제였다. 강력한 바닷바람은 모래 풍부한 사질 해안에 몰아쳐 마을을 모래밭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마을 처녀가 모래를 세 말씩이나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함씨 일가는 고심 끝에 모래사장 위에 해송을 심기 시작했다. 바람과 모래를 막을 목적이었다. 나무 심기는 척박한 섬에 작은 기적을 낳았다. 이후 제주 고씨, 전주 이씨. 김해 김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뤘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65세대 277명이 거주하고 있다.
해안가 1200여 m의 모래사장 위에 심어진 해송은 이제 폭 200m의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다. 연장길이만도 970여 m에 이른다. 숲의 넓은 공간에는 하층식생이 무성하다. 노송에 기생하는 고사리류의 일엽초와 풍란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숲과 더불어 마을 주민의 삶도 풍성해졌다.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주민들은 고구마를 키우며 쌀·보리·콩·유채 등도 생산한다. 근해에서 잡아 올린 멸치·조기·민어·삼치·농어 등도 내다 팔아 생계를 풍성하게 한다. 해송 숲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나무는 섬 중심이자 울타리
그래서 몇 해 전 솔껍질깍지벌레 피해로 나무가 계속 고사해 상당수 소나무 숲이 훼손됐을 때도 마을 주민들은 군과 합심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또 후박나무와 구실잣밤나무 등 활엽상록수를 심어 후계림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섬에서는 지금도 마을 주민과 숲의 공생이 계속되고 있다.
섬의 이름은 ‘관매도’다. 전남 진도읍에서 남서쪽으로 40㎞쯤 떨어져 있다. 이 섬의 해송숲이 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혔다. 매년 생명의숲국민운동이 유한킴벌리와 산림청과 함께 선정해 오고 있다. 진도군에는 숲 보호기금 300만원과 나무 표석이 제공됐다.
섬마을에는 수령이 800년이나 된 후박나무(천연기년물 212호)가 성황림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매년 정초면 주민이 모여 당제를 올린다. 관매도에서 나무는 마을의 중심이자 울타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