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막 내린 부산영화제에서 여배우들의 얼굴은 자연이 빚은 저녁놀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게 빛났다. 6년째 부산영화제 레드카펫 메이크업을 담당하고 있는 변명숙(37)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만났다.
실은 부산보다, 전 세계 4대 컬렉션인 뉴욕·런던·파리·밀라노 패션쇼의 백스테이지를 유일하게 누비는 ‘유일한 한국 출신 스페셜리스트’라는 설명이 먼저다. 한국인 최초로 런던 패션 위크 백스테이지 참여했고, 유니버시티 오브 더 아트 런던 재학 당시 교수의 특별 추천으로 유명 메이크업 브랜드 맥(MAC)에 입사한 뒤 2006년 한국 맥에 모셔져 온 주인공이다.
압구정동 컨셉트 스토어에서 그는 “테크닉에 앞서 영감이 우선돼야 내면의 아름다움을 얼굴에 반영시킬 수 있다”는 지론을 내놨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주된 역할은 뭔가.
예술적으로는 트렌드와 컨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측면에서는 본연의 아름다움이 가장 자연스럽게 피어나도록 도와주고 이끄는 일이다.
4대 패션쇼에 참여하는 유일한 한국 아티스트다. 책임감이 크겠다.
하루에 두 개의 쇼가 최대치다. 그렇게 17개의 쇼를 해치웠던 적이 있다. 그 모든 순간을 나는 하나도 잊지 못한다. 백스테이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니까. 총괄 아티스트를 도와 컨셉트에 맞는 메이크업 컬러와 디자인을 찾아가는 일은 언제나 극도의 긴장과 흥분을 준다. ‘내가 이 자리에서, 세계 최고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구나’라는 감격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자체다. 일종의 마약이다.
톱 모델과의 에피소드가 있나.
실명을 거론할 수 없지만 그녀들의 행동은 여러 의미로 개성이 넘친다. 하하. 라스트 미닛 걸(쇼 시작 직전에 나타나 모두를 분주하게 만드는 스타급 모델들을 속칭하는 말)들은 3분 안에 헤어와 메이크업, 보디 메이크업까지 마쳐야 한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죽어난다. 성격도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성공적인 쇼다. 백스테이지는 전쟁터고 우리는 모두 예술을 걸고 싸운다. 그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가진 전우들이다.
부산영화제와 패션쇼는 분명히 다를 텐데, 가장 큰 차이는 뭔가.
모델은 옷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런웨이에 선다. 그러므로 모델 개인의 감성보다 컨셉트와 트렌드가 먼저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배우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여야 한다. 배우 개인과의 소통, 편안함을 위해 메이크업 받는 동안 팔걸이의 각도와 파우치에 티슈와 면봉을 살짝 챙겨주는 것 등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체크하고 신경 쓴다.
한국 쇼가 배워야 할 점은?
한국 무대는 세심하다. 그러나 콜 타임(쇼를 시작하기까지 준비하는 시간, 외국의 경우 주로 두세 시간 정도)이 너무 길다. 쇼를 시작도 하기 전에 모든 스태프가 진이 빠진다. 표현 방식도 바뀌었으면 한다. 기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니 아무래도 창의력이 떨어진다. 감각적인 인재보다 기술적인 수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티스트와 테크니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한국 여성에게 ‘이것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메이크업이 있나.
첫째, 광대뼈·이마·눈밑살 등 지나친 광 메이크업. 둘째, 눈썹 안 그려도 되니까 다듬기만이라도 해주길. 셋째, 인위적인 속눈썹 연장술은 그만. 세계 곳곳을 다녀봐도 한국 여성만큼 아름다운 여성이 없더라. 서양에서도 동양 여성의 아름다움을 부러워하는데, 정작 우리는 왜 얼굴에 번쩍 번쩍 하이라이트를 주고, 무성한 눈썹인 채로 외출을 하고, 눈도 제대로 못 뜰 만큼 무거운 속눈썹을 달고 다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