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리를 겨눠서만이 적이 아니다. 우리 내부에도 적은 있기 마련이다. 적당주의와 기강 해이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군의 집중 포격을 받고도 즉각 대처하지 못한 연평도 사태는 그러한 결과다.
6·25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를 직접 겨냥한 170여 발의 포격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주민들의 아비규환은 말할 것도 없고 군시설까지 그대로 포격에 노출됐다. 북한의 해안포 진지로부터 코앞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군 내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여러 사고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 최근만 해도 저수지 도하훈련을 하던 장갑차가 침수됐거나 장갑차끼리 부닥쳐 언덕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더 나아가 레이더 장비를 갖춘 해군 고속정이 제주도 해상에서 어선과 충돌해 어이없이 침몰하기까지 했다. 링스헬기의 정비에 있어서도 정비업체에 대한 감독 소홀로 부품이 불량품으로 교체되는 등 심각한 허점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대포병 레이더가 작동되지 않아 목표물을 제대로 겨냥하지 못했으며, 6대의 자주포 가운데 3대가 고장 나 있었다니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군당국은 거듭된 말 바꾸기로 사실을 감추려 든다는 의혹을 자초했다. 여기에 서로 대치해 있는 북한의 대포가 1000여 문인데 비해 우리의 자주포가 백령도와 연평도에 12문밖에 배치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탐탁지는 않다. 이래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군의 제2, 제3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껏 서해5도 해역에서 북측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려고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999년과 2002년에 이어진 두 차례의 연평해전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대청해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전력의 우세는 확인됐지만 우리 군의 피해도 만만치는 않았다. 더욱이 올해 3월에는 천안함 피격사태로 46명의 젊은 장병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군 수뇌부의 정신 상태부터 너무 안이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지난 7월과 8월 연달아 실시된 한·미연합훈련과 서해합동훈련 당시 전체 장성 430여 명 가운데 140명이 훈련을 외면하고 여름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이 단적인 사례다. 다시는 천안함 사태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며 합동훈련이 실시됐건만 수뇌부의 마음은 정작 다른 데 팔려 있었다는 얘기다. 군 내부의 안보 불감증과 나태함을 질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군의 정예화를 위해서는 국방예산을 늘리고 노후화된 장비도 교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철한 안보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이 먼저다. 아무리 예산을 늘리고 장비를 현대화한다 치더라도 흩어진 정신 상태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당장이라도 전쟁터에 임할 수 있는 굳건한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그동안 휴전선을 경계로 총칼로 대치하던 남북한의 준전시 상황이 이번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엄연한 전시 상태에 돌입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욱이 어제부터 한·미 연합해상훈련이 서해에서 시작됨에 따라 북한군의 도발도 한층 격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은 “무서운 불벼락을 안겨줄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다”며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군도 북측이 도발할 경우 몇 배로 보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어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상황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사태는 최대한 막아야겠지만 눈앞에 포탄이 퍼부어지는데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급선무는 군이 조속히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다.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더 이상 군사기밀이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며 불신의 대상으로 매도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국토의 한 조각도 내줄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로 군 복무에 임하는 수많은 장병들의 자존심을 살리고 기강을 바로잡는 지름길이다. 그동안 누적된 이유로 결국 국방장관이 전격 경질당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지만, 지금이 군으로서는 명예 회복의 새로운 시발점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