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이른바 유이무삼(唯二無三)의 지구촌 양 강대국이다. 구소련이 사라지고 러시아가 과거처럼 크게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단언해도 좋다. 그럼에도 양국은 과거 구소련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국방백서 등에는 서로를 주적으로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의 한반도 사태만 봐도 이런 주적이 없다. 더구나 양국은 냉전시대의 구소련·미국과 달리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미 실질구매력(PPP)의 총량 부분에서는 2010년 기준으로 중국이 14억8000만 달러로 미국을 2000만 달러 추월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실제 연초 상황만 봐도 중국은 구소련과는 아예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미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선 4대 국영은행 중 하나인 중국 은행이 뉴욕 지점을 통해 미국에서 위안화 거래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당최 예사롭지 않다.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리커창 상무 부총리는 독일·영국·스페인을 순방하면서 총 202억 달러 상당의 통 큰 경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의 미국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총성 없는 전쟁인 경제 분야에서만 보면 중국은 미국이 이제는 이기기가 쉽지 않은 주적이 돼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국방 분야로 들어가면 중국이 미국의 주적일 수밖에 없다는 단정은 더욱 확실해진다.
이런 중국을 지도하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겸 총서기가 4일 일정으로 18일 방미 길에 올랐다. 언론 등에 따르면 그는 방미에 오르기 전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체제에 대해 ‘과거 시대의 유물’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지난 1세기 가깝게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말이 아닐 수 없다. 속으로는 과거처럼 손을 조금 봐 줬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게 작금의 현실이다. 게다가 미국은 지금 중국에무려 9000억 달러에 이르는 국채를 떠맡기고 있는 상태다. 무려 1000조원 넘는 빚을 중국에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오바마 대통령은 극진하게 후진타오 총서기를 맞을 자세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례 없는 최고의 국빈 방문으로 결정했다.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제품의 구매를 요구하기 위한 목적이 무엇보다 강한 탓이다. 이 정도 되면 체면 불구하고 손을 벌리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통쾌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후진타오 총서기가 오바마 대통령의 환대나 립서비스에 녹아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자만할 경우의 후폭풍은 진짜 대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의 질적인 측면에서 지금 중국은 미국을 상대하기가 버겁다. 또 중국의 엄청난 외환 보유고를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이 없다고 하기 어려운 미국의 달러 마구 찍어내기까지 더하면 후 총서기는 이번 방미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그게 아직은 질적으로 최고 수준에 오르지 못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중국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