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스님이 신라를 떠나 중국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긴 길을 다녀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400년 전이다. 중국의 광저우를 비롯해서 수마트라, 스리링카,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미르 고원 부근 등 중앙아시아 깊숙한 곳까지 그의 발길이 닿은 기록이 바로 ‘왕오천축국전’ 아닌가. 동과 서를 잇는 실크로드를 따라 미지의 나라와 사람들을 만나러 간 혜초는 그야말로 세계인이었다.
704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혜초 스님이 이십대 초반의 나이인 727년에 여행을 마친 뒤 이 책을 짓고, 이후 50년 넘게 중국 오대산에서 지내면서 무수한 불경 번역 사업을 하다 787년에 열반에 오른다. 당시 중국은 당 제국이었고, 당은 세계 국가의 면모를 갖추어 실크로드를 통해 이슬람권의 상인과 문물이 흐르고 넘쳤다고 한다. 서역은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었던 탓에, 당은 이슬람권 문명과 접하면서 전혀 새로운 기운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혜초는 자신의 삶의 영역을 동아시아에 한정시키지 않았다. 이런 그의 발자취가 남겨진 기록은 그의 책을 읽은 다른 서적의 인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1900년대 초기 프랑스의 학자 펠리오가 둔황의 석굴에 켜켜이 쌓여 있는 두루마리 자료 더미 가운데 그 실체를 마침내 발견하게 됐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1290년대에 나온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354년경에 출간된 이븐 바투다의 ‘여행기’와 더불어 세계 3대 여행기로 꼽히고 있는데 도리어 이 모든 것의 선두에 서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역사가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는 이런 인물들의 문명사적 교류의 노력을 ‘길 찾는 모험가(Pathfinders)’라고 부르면서, 이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돌파구를 보게 된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세계적 역사가 윌리엄 맥닐 또한 이로써 세상은 서로 이어진 하나의 ‘그물망(web)’을 얻게 되는 것을 주목한다. 지금 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실크로드와 둔황전’은 그런 모험과 그물망의 실마리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데 부족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