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군주는 단연 세종과 정조다. 시대가 다르니 맡겨진 역사적 책무가 당연히 달랐지만 뛰어난 신하들을 제대로 알아보고 그들의 힘을 극대화할 줄 안 것은 같았다. 세종이 집현전을 중심으로 조선조 초기 국가 발전의 기틀을 잡았다고 한다면, 정조는 규장각을 근거지로 조선조 후기 개혁정치를 펼쳐나갔다. 세종에게 성삼문, 신숙주가 있었다면 정조에게는 정약용이라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 있었다. 한편 조선후기 이 나라에 들어온 천주교는 신분의 차별이 없는 평등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중의 열망과 하나가 돼 가고 있었는데 정조에게 가까운 세력들은 천주교에 마음을 기울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에 정조의 개혁정치에 반기를 들고 있었던 자들은 천주교 박해에 앞장을 서는 상황이었다. 그런 까닭에 정약용이 천주교 세례자라는 사실로 궁지에 몰렸을 때 정조는 좌천의 형식을 통해 그의 목숨을 지켜냈다. 이 바람에 정조가 죽은 후 정약용은 적대 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를 가게 되나 역설적이게도 조선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명저를 남기게 된다. 실로 그 인생행로는 파란만장이었다. 정조 역시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직접 목격했고 외척 세력의 횡포에 시달려 숱한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니 하늘이 위인을 만들 때 먼저 그 뼈와 살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맹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 정조에게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나가 살펴보고 그 애환을 풀어주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국가재정에 필요한 공납에 이상이 생긴 사태를 수사하는 탐정을 정조가 직접 몰래 파견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김석윤 감독의 영화 ‘조선 명탐정’은 김명민, 오달수의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능청스러운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추리 구조에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보는 재미를 쏠쏠케 한다. 그렇게 관객을 정신없이 빠지게 해놓고 도달하게 하는 지점은 놀랍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갈망이다. 정조와 정약용은 과거의 인물로 박제될 수가 없다. 영화의 한 장면, 벼랑 끝에 몰린 채 몸을 날리는 운명에 처한 주인공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뷔로 겹쳐온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