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익은 보리밭 사잇길로 한 키 크고 마른 사나이가 턱시도를 입고 모자와 우산을 든 채 그림 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고흐의 노란색이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광풍을 떠올리게 한다면 이 경우는 봄볕처럼 정겹다. 낯선 나그네를 뒤따라오는 강아지가 갑자기 주춤거리는 듯하고, 나무와 구름에서 이제 막 태어난 것 같은 새들이 바람에 몸을 싣고 가볍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1951년 작 장욱진의 ‘자화상’이다.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등 1910년대 생으로 일본에서 미술수업을 한 이들과 함께 이 땅의 근대 미술이 처음 경험하는 사실적 추상의 세계를 연 장욱진은 간결한 선과 소박한 색상으로 우리네 토속적인 풍경을 천진난만하게 화폭에 담아냈다. 거기에는 해, 달, 산, 나무, 까치, 집, 소, 강아지, 닭, 가족들이 동화처럼 어울려 지내고 있다. 차갑게 기계화된 도시가 윽박지르듯 밀어내기 이전 우리의 삶에 공기처럼 존재했던 일상의 현실이 아련한 추억이 돼 다가온다.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했던 일본 화가들이 세운 학교에서 서양미술을 배운 장욱진은 미술학도로서의 수습 기간을 보내고 난 후, 더는 서양미술을 흉내 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정을 주었던 시골 마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그래서 그의 나이 서른넷에 그렸던 ‘자화상’은 장욱진의 미술이 걸어갈 미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몸은 서양식 턱시도를 걸치고 두 손에는 모자와 우산이 각기 들려 있지만 그가 지나온 길은 시골 논밭 사이 동구 밖이고 이제 그가 마주해서 볼 풍경은 우리의 촌락이다.
그런 까닭에 그건 단지 장욱진의 자화상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의 도구로 그려내는 우리다. 후기에 들어서면 그는 수묵화의 기법에 기대어 더더욱 간결해진 추상의 단계로 넘어간다. 턱시도를 어느새 훌훌 벗어던진 뒤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펼친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양미술을 배타적으로 대한 결과가 아니라 이 땅의 산천이 지어내는 선과 색에 그것을 녹여낸 성찰의 열매다. 압도해오는 서구 문물의 공세 앞에서 우리가 자꾸만 잃어 가고 있는 것을 복구해낸 장인의 예술정신이다.
그건 그의 생전의 미소처럼 정답고 따뜻하다. 그의 20주기를 맞아 경복궁 옆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장욱진을 만나고 온 날, 무척 행복했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