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게 펼쳐지는 빈 무도회 시즌을 알리는 오스트리아 관광청 홈페이지.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행되지 않는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위해 개최됐던 빈회의(1814~1815)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럽 각국의 군주와 정치인들이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 모여 전후 수습방안과 유럽의 장래 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우아한 궁전에서 벌어지는 성대한 연회와 호화로운 무도회. 오스트리아 정부는 참가자들을 접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들였지만 소수 강대국이 좌지우지한 의사진행은 각국간의 이해대립으로 지지부진했다. 여기서 ‘회의는 춤춘다’는 명언이 탄생했다.
세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G20체제는 지난주말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불균형해소를 위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지는 등 일부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향후 예상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불황은 계속된다. 그러나 빈은 춤춘다.’
세계가 경제위기의 후폭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2011년초 빈의 왕궁은 화려한 드레스와 연미복, 왈츠의 선율에 젖은 무도회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현지발로 전했다.
금융위기의 여파, 중동의 정세 격변, 유가 급등 등으로 세계 경제는 요동치고 사람들은 지갑 열기를 망설이고 있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빈 무도회’는 참가자수가 견고하게 증가하고 있다.
빈 무도회를 즐기는 참가자는 리먼 브라더스 쇼크 직후인 2009년에 약 30만 명으로 전년도와 비슷했지만 지난해에는 약 31만500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약 36만5000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중 빈 시민은 약 25만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만5000명, 빈 시민이외의 오스트리아 국민과 외국 참가자는 약 11만5000명(지난해 8만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외국인 참가자 중에는 부유층도 많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무도회는 빈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빈 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참가자들은 무도회에서 티켓, 의상, 식비 등으로 1인당 평균 220유로(약 33만원)를 소비한다. 올해 무도회 시즌의 경제효과는 7400만 유로(약 1110억원)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Ball)’로 불리는 빈의 무도회 시즌은 매년 11월 중순에 시작돼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된다. 섣달 그믐날밤 빈 중심부에 위치한 합스부르크가의 호프부르크 왕궁 대연회장에서 시작되는 ‘카이저발(KaiserBall·황제무도회)’을 필두로, 국립 오페라하우스에서 환상적인 왈츠 선율 속에 펼쳐지는 세계적 권위의 ‘오펀발(Opernball·오페라무도회)’, 커피하우스 오너들의 ‘카피지더발(KaffeesiederBall)', 요한 스트라우스 왈츠와 함께 하는 요한 스트라우스발(Johann Strauss Ball), 다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봉봉발(BonbonBall) 등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무도회가 연이어 수놓는다. 올해는 450회이상의 무도회가 개최됐거나 개최될 예정이다. 많은 날은 하루에 20회 이상의 무도회가 열린다.
오스트리아 무도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번영을 누린 합스부르크가와 귀족들만이 즐기던 무도회에서 비롯돼 일반 국민들 사이에 정착됐다. ‘귀족취미의 낭비’와 ‘빈부차의 상징’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는다. 초대받은 각계 명사들만이 아니고, 티켓을 사면 누구나 공주님이나 귀족의 기분을 맞볼 수 있다.
신문에 따르면 빈의 많은 가정에서는 지금도 자녀를 무도회에 데뷔시키기 위해 16세 전후가 되면 댄스교실에 보낸다. 좋은 집안의 자녀가 우선 목표로 삼는 무대는 국립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오펀발(오페라무도회)이다. 유럽 사교계의 데뷔 무대로서 TV로도 중계된다. 매년 1500명이상의 응모자 중에서 오디션을 거쳐 160쌍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
무도회는 청춘남녀에게는 ‘만남의 장’이다. 상류사회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남녀 별학(別學)이 대부분이라 무도회장에서 이성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류사회만이 아니라 과자점, 카페, 소방사, 경찰관 등 다양한 직종의 단체가 무도회를 주최한다. 의사 무도회나 법률가 무도회는 결혼상대를 찾는 젊은 여성들사이에 인기가 높아 티켓은 발행 즉시 매진되기 일쑤다.
“빈 시민에게 무도회는 겨우내 삶의 일부분이다. ‘불황이라 안 가겠다’는 게 아니다. ‘체험’을 앞세운 해외판매 상품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신문은 빈상공회의소 회장의 말을 빌려 무도회가 대성황을 거두는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