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지난 겨울, 일본에서는 ‘마스크’와 관련된 두 가지의 이색적인 사회현상이 유행을 끌면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익명의 기부문화를 확산시킨 ‘타이거마스크 운동’과 얼굴 가리기용 마스크를 유행시킨 ‘다테 마스크’ 현상이 그것이었다. 마스크와 관련되어 있지만 현대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상이한 현상이다.
◆익명의 책가방 기부에서 비롯된 ‘타이거마스크 운동’
‘타이거마스크 운동’은 지난해 12월 25일 군마현 마에바시시 중앙아동상담소 앞에 초등학생용 가방 10개(총액 30만엔 상당)가 들어있는 빨간색 종이가방이 발견된 것이 출발점이다.
보낸 이의 주소나 연락처 대신에 ‘다테 나오토(伊達直人)’라는 이름과 함께 “책가방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만 적혀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큰 인기를 끈 프로레슬링 만화 ‘타이거 마스크’의 주인공 ‘다테 나오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아동상담소에 잇달아 책가방을 보내는 선행이 이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불황의 늪에 다시 빠지면서 암울한 시절을 보내던 일본 사회는 익명의 선행릴레이를 지켜보며 이웃의 정과 새로운 희망을 느끼고 있다. 뿌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타이거마스크 기금’까지 등장했다.
◆2개월간 1000건에 책가방 750개, 현금등 3200만엔 돌파
기부자중에는 70대의 노인부터 초중학생까지 폭넓었다. 기부물품의 수신처도 양로원, 경찰, 대형슈퍼 등으로 다양했다. 나라현에서는 아동보호시설내에서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익명으로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1월 15일까지 확인된 사례만 1000건이 넘었고, 초등학생 책가방 750여개, 현금과 상품권 3200만엔에 이르렀다. 2010년에 9개월동안 아동보호시설에 기탁된 기부금(4000만엔) 총액을 2개월만에 돌파했다. 개중에는 제조일자를 알 수 없는 식품도 있어 ‘선의인지 악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시선으로부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다테마스크’
‘타이거마스크 붐’이 일본사회의 희망을 보여준다면, ‘다테 마스크’ 현상은 사회부적응이라는 그늘진 일면을 보여준다.
‘다테 마스크(だてマスク)’에서 ‘다테(だて·伊達)’는 ‘멋을 부리거나 짐짓 호기를 부린다’는 뜻의 명사다. 도수를 넣지 않고 멋으로 쓰는 안경을 ‘다테메가네(だて眼鏡)’라고 하는데, ‘다테마스크’는 마스크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스크는 감기나 꽃가루 알레르기, 황사 방지용로 착용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다테마스크’는 얼굴을 가려 상대적으로 눈이 커보이게 한다거나 얼굴의 약점을 가린다거나 남 앞에 나서고 싶지 않을 때 착용한다.
‘다테마스크’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이제는 어른 세계에까지 침투하고 있다고 최근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다테마스크’ 착용은 자신의 세계에 빠지고 싶다는 내향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교실이나 직장에서도 마스크를 쓴다. ‘식사할 때와 세수할 때, 잠잘 때’만 제외하고 쓰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다테마스크를 쓰면 내 얼굴을 보이기 싫은 사람 앞에서 표정이나 정체를 감출 수 있고,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웃거나 얘기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독방’의 청소년들에게 마스크는 자신만의 세상으로 향하는 또다른 통로인 셈이다.
◆스트레스 해소 수단…교사들 학생지도에 애먹기도
이바라키현의 중3 여학생(15)은 동급생으로부터 ‘기분 나빠’ ‘못난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 남의 시선이 두려운 나머지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절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로부터 배신당한 뒤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학생도 있다.
사이타마현의 한 주부(49)는 외출시에 ‘다테마스크’를 착용하고 모자를 눈부위까지 푹 눌러쓴다. 중학생인 장남이 동급생과 부모들로부터 “분위기를 모르는 아이”라는 취급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군 어머니 아니세요?”라고 부를 때마다 “내 아이가 또 무슨 일 저질렀나?”라고 깜짝 놀라곤 했다. 아들과 ‘도매금’으로 넘어가기 싫어 외출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의 경우도 있다. 아이치현의 50대 공무원 남성은 직장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지난해 신종플루 때 착용한 것이 계기가 됐다. 동료들은 지금도 신종플루 예방차원에서 착용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맘이 놓이고 쓰지 않으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느낌이 든다. 쓰고 있으면 대민창구에서 시민들이 큰소리를 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스트레스 쌓이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극단적인 수단으로 마스크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테마스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학생지도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선생님과 학부모도 늘고 있다. 도쿄에서 자영업을 하는 여성(45)의 장남은 2년전인 고1때부터 다테마스크를 하고 학교에 다닌다. 학교생활이나 진학문제와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도 마스크 얘기만 꺼내면 “시끄러워”라며 입을 닫아버린다.
오사카의 공립중학교 교사(28)는 일년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다테마스크’인지 건강상 쓰는 마스크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무리해서 벗길 수도 없어 속앍이하고 있다.
◆‘익명성’ 선호의 일본문화 단면 보여줘
만화 주인공의 이름으로 세상에 정과 사랑을 베푸는 ‘타이거마스크 운동’과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싶어 나를 가리는 ‘다테마스크’. 전혀 다른 ‘마스크’ 현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익명성’과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오타쿠' '히키코모리' 문화의 연장선에서도 볼 수 있다. 대중앞에 자신을 내보이거나 남의 생활을 방해하거나 남의 시선에 방해받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자못 흥미롭다.
/류수근 일본전문기자 ryusk@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