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큰맘먹고 남쪽 나라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호텔 선정에 앞서 가장 큰 양자선택의 기로에 부닥쳤는데 바로 번화가 시내에서 가까운 리조트냐, 아니면 근처에 유흥시설이 없는 외곽의 리조트냐 하는 거였다. 후자의 시설이 조금 더 나았기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심심한’ 호텔로 결정했다. 외부 자극 없이 세 가족이 더 호젓하고 친밀하게 지내기 위함이었다.
다섯 살 된 아이는 요즘 들어 부쩍 잠 자기 직전까지도 놀아달라고 기를 쓰고 달려든다. 내일 일어나서 하자고 해도 요지부동, 차라리 달래고 어르고 협박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놀아주는 게 효과적이고 빠를 정도다.
일본의 한 가족관계 개선을 위한 합숙캠프 프로그램을 보면 도중에 어떤 형태로든 갈등 관계에 있는 아빠 혹은 엄마, 그리고 아들 혹은 딸이 대면하고 평소 못했던 얘기를 큰소리로 서로에게 외치는 시간이 주어진다. 평소에 반항하거나 심약하거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초등학교 아이들은 엉엉 흐느끼면서 비슷한 이 한마디를 어린 짐승처럼 부르짖었다. “아빠(엄마), 나랑 놀아줘! 엉엉∼”
절규에 가까운 그 소리를 들으며 주중에도 일 때문에 아이를 장시간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종종 밀린 일 핑계로 베이비시터를 불러 아이를 맡기곤 했던 내가 떠올랐다. 이뿐만 아니라 저녁에 일 때문에 외출하게 될 때 남편에게 아이를 던져놓고 슬쩍 일이 시작되는 시간보다 더 일찍 나와 최대한 ‘놀아주는’ 의무에서 벗어나려 했던 내가 생각났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왜 이리도 힘들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놀아주는 것이거늘. 여러 육아 전문서가 쏟아져 나오고, ‘성장기에 필요한 아이들의 충족감을 위해선 어쩌고저쩌고’ 여러 말들이 많지만 가정교육의 근본은 같이 진심으로 놀아주는 것, 정말 이것밖엔 없는 것 같다. 나머지는 아이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