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해안 마을들을 송두리째 집어 삼켰다. 자연의 가공할만한 위력 앞에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일본 열도는 물론 전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다. 강도 높은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피해지역이 워낙 넓고 상흔이 깊어 아직 구체적인 복구계획조차 잡을 수 없다. 원자탄의 아픔을 지닌 일본은 원전의 방사능 노출 위험까지 직면하면서 초유의 재난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번 강진과 쓰나미를 지켜보는 세계 언론은 대재앙에 맞서는 일본의 대처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지진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의 대응에 혼선이 빚어졌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이번 지진은 기상청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워낙 강력한 수준이어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AP통신은 11일 전세계 지진 관측 역사상 5번째로 강한 지진을 겪은 일본이 ‘최선의 대비’를 했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일본은 단층의 파장 감지에 근거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진동을 느끼기 15초 전에 이미 국민들에게 지진 경보를 내려 대피를 유도했다고 전했다.
지진전문가인 데니스 밀레티 전 캘리포니아 지진안전국장은 일본에 대해 전 세계에서 건물 내진 설계 등 지진에 가장 잘 대비하는 국가로 꼽으면서 “지진에 가장 취약한 국가인 아이티에서 22만명이 희생된 것과 크게 대비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내진설계 등 엄격한 건축규칙과 체계적인 대피훈련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워낙 해안에서 가까운 곳에서 강진이 발생해 신속한 쓰나미 경보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피해가 컸지만 진동으로 인한 건물 붕괴는 많이 없었다는 점은 내진설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들의 대응은 단연 화제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평소 훈련한 대로 침착하게 대처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 브라질 여성은 “세상에 종말이 온줄 알았다”고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도 “이웃 주민들은 놀랍도록 침착했으며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사태를 주시했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신속하게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고 공영 방송은 즉각 지진 대응 방송으로 전환했다. 안전을 고려해 열차의 운행은 즉시 중단시켰다. 일본 정부는 지진 발생 불과 2시간만에 대책본부를 꾸렸다. 자위대에도 총동원령을 내렸다.
치밀한 내진설계와 평소 반복된 훈련, 그리고 재난에 대한 국민의식이 혼란 속에서도 냉정함과 침착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진도 6~6.5정도의 강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판구조론상으로만 보면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어 지진의 발생 빈도가 낮고 규모도 일본 등에 비해 작지만 발생위치가 매우 불규칙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동해와 일본 서해안사이에서 강진이 발생할 경우에는 쓰나미의 위험성도 크다.
우리 정부도 지진과 지진해일에 대한 면밀한 탐지를 위해 국가통합지진관측망을 전국 100곳에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는 울릉도에 해저 지진계와 해일 파고계를 설치해 지진해일을 감시하고 있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은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1000㎢이상인 건축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 하고 있다. 지진발생시 국민행동요령도 마련되어 있고 재난대응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소방방재청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진 교육훈련을 받은 적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에 못 미쳤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13일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시설물별 내진실태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행법상 지진 대비 구조를 갖춰야할 시설물의 80% 이상이 3년째 내진 설계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도 있고 행동요령도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필자가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할 당시 외국인등록을 하면서 처음 자료를 받고 설명을 들었던 게 지진발생시 행동요령 책자였던 기억이 난다.
정부는 지진경보체계와 내진설계 현황 등을 재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관련예산의 최우선 확보 및 중요 시설물에 대한 내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지진 발생시 행동요령의 교육 및 훈련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과도한 불안감은 오히려 개인 건강이나 국가적 대응책 마련에 좋지 않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철저한 대비만이 재난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강진을 계기로 일본 국민이 보여준 일사불란하고 침착한 대응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