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1포기 1827원, 풋고추 100g 416원, 양파 1kg 860원….
10년 전 가격 얘기가 아니다. 중국산 농산물은 더더욱 아니다. “삼겹살로 상추를 싸먹을 판”이라던 아우성은 간데없고, 채소가격이 연일 떨어지는 중이다.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채소 대란’이 봄을 맞으면서 ‘공급 대란’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하지만 농산물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유가·가공식품·서비스·공공요금 등 복병이 수두룩해 소비자 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할 전망이다.
24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가격정보 사이트(www.kamis.co.kr)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으로 채소류 가격은 전반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배추·풋고추 등 일부 품목은 평년 가격에도 못 미칠 만큼 폭락하고 있다.
농산물, 특히 채소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은 날씨 영향이 크다. 봄으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오르자 채소류 생산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것만으로 서민들이 물가 안정을 체감하기는 역부족이다. 기름값과 과자류, 각종 서비스 요금 등이 계속 상승곡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즐겨먹는 오예스·에이스·홈런볼 등의 소매가격이 대형마트 기준으로 16% 안팎 뛰었고,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동서식품은 25일부터 ‘맥심’ 커피 전제품의 출고가격을 9.0~9.9% 올린다. 담뱃값도 오른다.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에서 KT&G에 이어 2위를 달리는 BAT코리아는 28일부터 소매점에서 파는 던힐·켄트·보그의 가격을 2500원에서 8% 오른 2700원에 판매한다.
직장인 한준호(39)씨는 “빠듯해진 주머니 사정으로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개피로 시름을 달랬는데 서민들의 대표적인 기호식품 가격까지 줄줄이 오른다니 기가 막히다”며 “서민물가의 상승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렵다”고 토로했다.
◆서민들 "5월도 잔인한 달"
더 큰 문제는 물가가 내릴 일보다는 올라야할 이유가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제당업계가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설탕값을 9~10% 올린 데 이어 제분업계도 이달 들어 8% 중후반대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를 재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들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상승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원유와 곡물, 비철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중간재 가격이 치솟은 점도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판이다.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도 더 이상 틀어막을 여력이 부족한 상태다. 한국전력이 발전 자회사로부터 사들이는 전력의 단가는 1분기에 ㎾h 당 84.81원으로 지난해 1분기의 80.21원보다 5.7% 상승했다. 전기요금 원가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전력구입비 상승은 요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4월 소비자물가는 4%를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물가는 상당히 어려운 단계”라고 실토했다. 결국 소비자에게는 5월도 ‘잔인한 달’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