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에 의해 개혁, 개방 정책이 입안된 1978년 이후 중국의 화두는 간단했다. 실사구시였다. 요컨대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사회주의 최고 선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이때부터 이에 입각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이후 33년이 지난 지금 덩의 생각은 외견적으로는 주효한 것 같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 덩은 색깔에 관계없이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 이 고양이는 쥐를 너무 잡아먹었는지 엄청나게 덩치 크고 먹성도 놀라운 괴물이 돼버렸다. 색깔을 따지기에는 너무 한가할 만큼 기형이 됐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렇다. 단적으로 중국인이 가장 중시하는 먹는 문제만 봐도 현실은 잘 드러난다. 하루에 10위안(약 165원)으로 살아가는 4인 가족이 최소 2500만 가구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하루 저녁에 1만 위안(약 165만원)을 먹는 것에 써도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는 졸부들이 전국에 수천만 명을 헤아리는 게 현실이다.
이 정도 되면 지금 중국은 덩이 그토록 열망한 실사구시 국가가 아니라 사회주의 형 신자유주의 국가가 됐다고 해도 맞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사회라고 해도 괜찮다.
현재 상황이 대폭 개선되지 않는 한 사회적 약자가 설 자리는 없어진다. 대신 졸부나 재벌들에게는 이 이상의 조건이 없다. 덩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대 재앙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최근 보인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먼저 후진타오 국가 주석 겸 총서기의 주장에서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24일 칭화 대학 100 주년 기념식에서 “학생들은 덕과 재능을 겸비하고 개성을 길러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약자에게는 120% 불리한 제로섬 경쟁에 경종의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주룽지 전 총리가 22일 “상하이 모터쇼에서는 1억 위안(165억 원)이 넘는 초호화 승용차가 팔리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농촌의 어린이들은 아직 무상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 비판의 발언 역시 비슷한 입장 피력으로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최근 경제 발전의 견인차인 고위 관료들이 인문학 열공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으로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제공하는 수준 높은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 베이징 시의 국장급 이상 간부 180명의 행보를 꼽을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주장을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풍긴다.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은 중국보다 더 암담하다고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중국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