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는 공자의 제자다. 그 안회가 뜻하지 않게 요절하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라며 깊게 탄식하고 운다. 논어에는 안회에 대한 공자의 애틋한 마음과 경의마저 도처에 표현되고 있다. 플라톤은 글 한줄 남기지 않은 스승 소크라테스를 그의 ‘공화국’에서 되살려 놓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어떤가?
한나 아렌트는 유대계 출신의 독일인으로 나치스 때 미국에 망명한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비롯해서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에 대한 보고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의 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아렌트의 스승은 카를 야스퍼스다. 서구 문명의 정신적 출발점에 대해 깊은 성찰을 남긴 야스퍼스로부터 아렌트는 뿌리가 단단한 철학적 훈련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책 ‘혁명에 대하여’의 첫 장에 스승 야스퍼스 부부에게 바친다면서 ‘존경과 우정과 그리고 사랑을 담아’라고 적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제자이기도 하다.
손문은 중국 근현대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존경을 받는 중국인의 스승이다. 스승이 있는 나라는 위기가 닥쳐도 중심을 잡는 기준을 갖고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정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근원을 목격하게 한 일본의 스승이다. 그는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이라는 책을 통해 군국주의 일본의 폭력과 야만 앞에서 책임의식을 잃어버린 일본인의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내어 일본을 각성시켰다.
우리에게도 선생이라는 경칭이 붙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인들만 거론하자면 김구, 신채호, 함석헌, 장준하, 그리고 대통령을 지내기 이전 재야로 추방당했던 시절의 김대중을 비롯해서 민족의 양심과 사표라는 의미를 갖는 인물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시절도 다 지나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단지 학창시절의 사제지간만으로 축소됐고 그 마저도 예전의 존경과 애틋함은 사라진 채 공식적인 관계만 잔재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
스승을 갖지 못한 나라 또는, 좋은 스승을 찾아 제자가 되려는 이들이 적거나 없는 나라에서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기는 더더욱 어렵다.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그 스승을 어떻게든 찾아 경의를 표하고 배움을 청하는 제자가 있는 나라에서나 제자가 선생보다 낫구나하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비로소 그리고 진실로 성립된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