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유난히 기억나는 한 선생님이 있다. 미국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역사 선생님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유태계 중년 여성이었다.
나는 이 수업 덕에 토론이 진정 무엇인지 처음 알았으며, 한국전쟁의 진실에 충격을 먹었으며, 미대 진학을 관두고 정치학과로 갈아탔다. 그렇게 많은 영향을 미칠 만큼 나는 그녀에게 인간적으로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그녀의 강인함, 공정함, 엄격함, 일관됨 그리고 교육에 대한 헌신.
그녀의 수업은 주로 한 주제를 칠판에 써놓고, 자유토론을 하는 식이었는데 그녀는 오로지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하도록 도와주는 견인차 역할만 했다. 학생들은 종종 엉뚱하고 앞뒤가 안 맞는 논리를 설파했지만 그녀는 그 어떤 의견에도 핀잔을 주거나 서열을 가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생각을 깊게,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도왔다.
핀잔이라면 불성실하게 토론에 임하는 ‘태도’를 지적했지 ‘내용’은 손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우리들의 엉성한 생각들은 서로 부딪히면서 다듬어져 나름의 결론과 추가로 생각할 거리의 여운을 남기며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다. 그것은 여태 경험해본 그 어떤 소통의 경험보다 짜릿했다.
몇 년 후, 뇌의 즐거움에 대한 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나는 한국 대학의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정치학 수업은 일방적인 강의와 받아적기의 연속이었다. 그 가운데 기대 없이 수강 신청한 ‘한국 정치사’ 강의에서 교수님이 대뜸 칠판에 주제를 써놓고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학생들 서너 명이 열심히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 ‘오프닝’ 장식이 끝나자 교수님은 거기서 딱 흐름을 자르더니 이내 자신의 해답(이라고 주장하는 그것)을 우렁차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교수니까 당연히 논리도 그럴싸하고 ‘말발’도 세서 학생들은 다 기가 죽었다. 난 배울 마음이 속에서 죽어갔다. 그 교수님은 (역시나) 지금 정치권에 계신다. 역시 선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