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배럴(pork barrel)’. 원뜻은 ‘돼지고기를 담는 통’이다. 미국 정가에서는 정치인들이 지역구 선심성 사업을 위해 정부 예산을 따내려 경쟁하는 행태를 비난하는 의미로 쓰인다. 예산을 얻으려고 모여드는 의원들의 모습이 마치 농장에서 농장주가 돼지고기통에 한 조각의 고기를 던져줄 때 몰려드는 노예들 같다고 해서 생겨난 정치적 수사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포크배럴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무상복지예산 증액 요구를 포크배럴에 빗대어 비판한 것이다. 그러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발끈했다. 국회의원을 ‘돼지’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박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주장까지 나왔다.
박 장관의 비유가 적절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발언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재원 조달이 불투명한 막무가내 복지 확대에 맞서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는 것은 나라 살림을 책임진 재정부 장관으로서 당연한 책무다. 나라 살림이야 어찌 되든 표만 얻으면 된다는 양 퍼주기 경쟁을 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비난받을 일이다. ‘돼지’라는 말을 들어도 싸지 싶다.
나라 빚은 올해 435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35.1% 수준이다. 아직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세수는 줄어들고 복지지출은 늘어나는 등 재정악화의 가능성이 크다. 실제 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복지지출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나라 빚이 2050년이면 137.7%로 급증한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위해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세입을 고려하지 않는 원칙 없는 복지 확대는 재앙이 될 공산이 크다. 과도한 복지 지출로 재정 위기에 처한 그리스 등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 때는 이미 늦는다. 정치권은 박 장관을 비난하기에 앞서 분별없는 퍼주기 경쟁을 자제하는 게 옳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