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달밤에 담벼락에 붙어서 애절한 표정과 수줍은 몸짓으로 밀애를 즐기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그림.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月下情人)을 보면서 늘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림 속의 달의 모양은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닮았는데 볼록한 쪽이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런 달의 모습은 애시당초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림 속에서 시간을 야삼경(夜三更), 즉 밤 12시 즈음으로 적고 있다. 그믐달은 새벽에 초승달은 초저녁에 보이는 달이다. 한밤중에 이런 모양의 달이 있는 것도 이상한데 볼록한 면이 위쪽을 향하고 있다니.
물론 신윤복이 자기 마음대로 상상해서 그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소행성을 발견했던 아마추어천문가 이태형씨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내놓았다.
그는 그림 속 달의 모양이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아랫부분을 가리고 지나가는 부분월식이 일어날 때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먼저 1758년생인 신윤복이 활동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기가 포함된 약 100년 동안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부분 일식을 모두 조사했다. 그 결과 1784년 8월 30일과 1793년 8월 21일에 있었던 부분월식에서 월하정인 속에 그려진 달의 모양과 거의 똑 같은 달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1784년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당연히 부분월식을 관측할 수 없었다. 한편 1783년 8월 21일에는 낮에 비가 그쳐서 부분월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의 분석이 맞는다면, 신윤복은 1793년 8월 21일 밤 11시 50분 부분월식을 그린 것이다. 그림 속에 부분월식 장면을 그려 넣은 신윤복의 날카로운 관찰과 정확성도 감탄스럽고 그 그림 속의 비밀을 찾아낸 (물론 반론도 있지만) 한 아마추어천문가의 열정과 통찰도 멋지다. 달빛이 가려져서 어두워지는 자정 무렵의 밀애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티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