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기업은행을 방문했다. 고등학교 졸업 신입 행원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다. 고졸 신입 행원들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축하해 주었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졸 출신 신입 사원들이 여간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행만 해도 고졸 신입 행원 채용은 1996년 이후 15년 만이다.
기업은행에서 불기 시작한 고졸 채용 바람이 확산하고 있다. 은행권은 올해 787명을 포함해 2013년까지 3년간 모두 2722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주요 대기업들도 고졸 사원 채용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능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 위주의 현실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대졸자 우대’의 고질이 깨지지 않는 한 이 같은 흐름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대졸자들이 넘쳐나 취업이 어렵자 고졸자들이 가야할 자리까지 대졸자들이 대신하고 있는 현실이다. 환경미화원 채용에도 대졸자가 몰려들 정도다. 학벌주의의 병폐가 학력 인플레를 낳고, 학력 인플레가 고졸자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악순환이 고착화하고 있다.
지난해 대학진학률이 79%(일반계고 81.5%)다. 너도나도 대학에 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는 변변한 회사에 이력서도 내밀기 어렵다. 특성화고(옛 전문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2002년 50.5%에서 지난해 19.2%로 급감했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71%가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은 며칠 전 경기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만나 ‘고졸 취업’ 얘기를 또 했다. 이 대통령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고등학교만 가도 취업하기가 쉬운, 그런 정책을 써야 한다”고 했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말보다 실천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 55곳이 지난 1년간 채용한 신입사원 가운데 고졸 출신은 고작 1.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등잔 밑부터 잘 살필 일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