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한 마리가 고양이 눈을 연신 쪼아대고 있다. 그러나 전혀 공격적인 태세는 아니었다. 고양이도 그게 싫지 않은 듯 눈을 게슴츠레 감고 가끔 몸을 부르르 떤다. 병아리가 쪼아댄 것은 고양이의 눈동자가 아니라 눈꼽이 낀 눈가 가상 자리였다. 꼭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작업이 만족스럽게 되었다고 여겼는지 병아리는 훌쩍 고양이 등에 올라탄다.
그리고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고양이 등에 온 몸을 웅크린 채 쉰다. 병아리가 아주 귀여운 목소리로 “아유, 힘들어”하는 것만 갈다. 고양이는 “고단하니, 애기야? 푹 쉬거라”고 부드럽게 말하고 있나? 그때 고양이와 오랜 친구인 옆집 개가 어슬렁거리며 마실을 온다. 그러자 고양이가 바짝 경계심을 보인다. 전 같으면 서로 반갑다고 어우러질 참이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병아리 쪽으로 다가서자 고양이가 날쌔게 개 쪽으로 가더니 개 면상을 양발로 사정없이 번갈아 친다. 세상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 야옹아, 너 왜 이러냐?” 갑자기 당한 처지가 된 개는 영문을 모르는 채 슬금슬금 뒤로 빠지더니, 뭔가 깨달은 듯 몸을 돌려 병아리를 공격할 자세를 취한다. 고양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너 한 번 더 맞아볼래?”
고양이가 새끼처럼 기르는 병아리, 고양이를 엄마처럼 따르는 병아리. 흥미롭기도 하고 감동적이다. 어느 날 TV의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었다. 너구리 새끼를 애지중지 키우는 개도 있었다. 얼핏 우리의 상식으로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거나 또는 함께 두면 한 쪽은 희생되게 돼 있는 동물들이 짝이 되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조지 오웰은 인간사회의 모순을 빗댄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돼지 나폴레옹은 권력의 비열함을 보여준다. 물론 돼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돼지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거다. 독일의 민담 ‘브레멘의 음악대’는 농장에서 학대받고 쫓겨난 당나귀, 개, 고양이 그리고 수탉이 함께 브레멘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본래 서로 친해질 까닭이 없는 이들이 도둑을 쫓아내고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대가 된다.
돼지 같은 nom, 여우같은 nyon, 너구리같은 자식, 닭大가리, 개색휘, 이런 말이 과연 옳은 걸까? 아마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가만히들 안 있을 텐데. 집단소송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