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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 '전설의 도자기'에 中日 골동품계 논쟁 가열

일본서 발견된 ‘화병’ 역사적 출처 불명 중국 전설의 명요 ‘시요’ 가능성 대두 ‘시요’로 확인되면 ‘세계적 발견’될 듯 연대 측정서 ‘시요’존재 추정연대와 겹쳐

중국의 전설적인 명요 '시요'의 도자기 가능성이 제기 되고 있는 화병을 소개하고 있는 일본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전설적인 ‘환상의 도자기’가 나타난 것일까?

일본에서 발견된 한 점의 도자기에 일본과 중국의 전통 도자기 전문가들이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7월28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 발견된 화병 하나가 전설의 자기 ‘시요(柴窯)’일 가능성이 제기됐고, 중국 도자기업계도 이를 주목하고 있다.

화제의 자기는 ‘청백합화병(靑白合花甁)’으로, 재일본중국역사문물보호협회(회장 다이나카 조운)가 소유하고 있다. 높이는 약 29㎝이고, 두께는 2㎜로 얇다. 입구는 나팔처럼 되어 있고, 병바닥 위 부분에는 볼록한 부분이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복잡하게 색조가 변하는 청색이 선명하다. 화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기(酒器)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을 넣어 기울이면 볼록한 부분에서 청명한 소리가 들린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이나카 회장은 1998년 감정을 의뢰한 지인이 가져온 화병을 보고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가 명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 자기라고 한다.

다이나카 회장은 중국의 역대 작품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이와 비슷한 자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가능성이 ‘시요’였다고 한다.

후주의 황제 이름 딴 명요…존재 확인 안돼

중국 명나라 시절의 저서 ‘선덕정이보(宣德鼎彝譜)’에는 ‘시, 여, 관, 가, 균, 정’(柴, 汝, 官, 哥 , 鈞, 定)이라는 6대 저명한 요장(窯場)이 열거되어 있다. 이중 ‘시요(柴窯)’를 제외한 나머지는 ‘송대 5대명요(宋代 五大名窯)’로 불린다.

‘시요’는 10세기 ‘5대10국시대(五代十國時代)’에 현재 허난성(河南省) 주변을 통치한 후주(後周)의 2대 황제 세종(世宗, 이름 柴榮)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설치한 요장이다. 청나라 문헌에 따르면 세종은 “비가 개는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청천(靑天)의 푸르름을 표현하라”고 명했다. 세종은 명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재위기간이 6년으로 짧았기 때문에 ‘시요’는 이 시기에만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고대 문헌에는 ‘시요’를 ‘푸르기는 하늘 같고, 밝기는 거울 같고, 얇기는 종이 같고, 울리기는 경(磬, 중국 고대 악기) 같다’고 묘사했다. ‘송대 5대명요’ 자기가 수십억원 이상에 거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요’로 확인될 경우 ‘세계적 발견’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화병의 존재가 알려지자 중국의 여러 지역 TV방송국에서 일본을 방문해 ‘시요 발견인가’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고, 골동품전문지와 학술지도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세종 황제의 36대 직계손으로 허난성 시요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차이춘차이(柴存才·48)씨도 일본을 방문해 화병을 감상하고 돌아갔다. 차이춘차이 씨는 “문헌과 부합하고 완성도가 높은 것을 보고 시요라고 생각했다. 선조가 만들었을지 모를 작품을 눈으로 볼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존재 하지 않는다” 회의적인 의견도 많아

‘진짜 시요인가?’라는 회의적인 견해도 적지않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다이나카 회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중국과 유럽 등지의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비교할 수 있는 시요의 실물은 찾을 수 없었다. 전문가들로부터 “일품이긴 하지만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만 얻었다. 오래됐어도 200년정도 전인 청나라 때 작품이라는 추정이 많았다.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중국 도자기에 정통한 중국국가박물관의 리즈옌(李知宴) 연구원은 “시요가 존재했다는 근거가 된 명나라 때 문헌의 필자가 자신의 눈으로 시요를 본 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조사에도 불구하고 시요의 유적이나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요는 존지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다이나카 회장은 2005년 영국 옥스포드대에 화병의 연대측정을 의뢰해, 700~1100년 전의 자기라는 결과가 나왔다. 시요의 연대와 모순되지 않는다. 다이나카 회장은 2006년 중국과 일본에서 ‘환상의 지보(至寶), 시요 발견’이라는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옥스포드 측정법이 정확한 건 아니다’‘일본에서 발견될 리가 없다’‘감정서는 위조할 수 있다’는 등의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다이나카 회장은 지난 1월 중국중앙TV(CCTV)의 요청으로 화병을 갖고 중국에 건너가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현장에는 중국 각지에서 전문가들 약 80명이 모였다. 중국에서 신뢰성을 가장 높게 인정받는 미국산 연대측정기가 준비됐다. 전문가들이 보는 가운데 측정한 결과 북송(北宋, 960~1127년) 이전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판정 제작년도가 시요의 존재 추정 시기와 겹친 것이다.

화병이 시요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렇지만 이를 계기로 허난성과 산시성(陜西省) 등지에는 시요연구회가 만들어졌다. 올 가을에는 일본과 중국 전문가가 모이는 연구회도 발족할 움직임이다.

베이징의 고궁박물원 고기물부(古器物部) 우청룽(吳成龍) 부주임은 “시요가 존재했는지 아닌지는 논의할 여지가 있지만 특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화병이 도자기사상 최대의 수수께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시요의 존재 여부를 떠나 역사를 밝히려는 전문가의 지칠줄 모르는 집념은 높이 살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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