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심조차 물폭탄에 마비되고 말았다.
무르팍까지 차오른 물길로 인해 버스와 택시가 교차로마다 뒤엉켰고 시민들은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강남 일대의 저지대에서는 승용차가 둥둥 떠다녔고, 올림픽대로를 비롯한 주요 간선도로에서는 통행이 가로막힌 승용차 안에서 운전자들이 초조해하며 한두 시간씩이나 갇혀 있어야 했다. 도시 경쟁력을 높여 세계적인 ‘명품 도시’를 꾸미겠다는 서울의 처참한 모습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산사태까지 겹쳐 적잖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봇물이 터지듯 우면산 기슭에서 순식간에 토사더미가 쏟아져내려 아파트와 전원주택 단지를 덮쳤다. 여기에 강원도 춘천시와 경기도 동두천, 파주, 광주 등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나고 하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었다.
이틀 동안에 무려 500mm 이상의 빗줄기가 쏟아졌으니, 100년 만에 최악의 집중호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그런 핑계로 사태를 얼버무리고 넘어가기에는 피해가 너무도 컸다.
사전 방재대책이 소홀했다는 것이다.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에도 그대로 방치했거나 위험요인을 더 키웠다는 원망 소리도 들려온다. 도시가 겉으로 치장하는 동안 지하의 배수관은 터지고 토사로 가로막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한복판이 물바다로 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추석 때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다. 몇 년 사이에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경련을 일으키면서 이어지는 이변 현상이다. 그때마다 당국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곤 했으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도심은 갈수록 팽창하고 땅바닥이 보도블럭이나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홍수 때마다 빗물을 토해내고 있다.
어차피 장기적인 배수관 교체공사나 재개발 계획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정책이나 르네상스 조성사업으로 인해 각 지역마다 홍수에 더 취약하게 되었는지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광화문광장의 경우 온통 화강암과 시멘트로 덮여져 피해가 더 커지고 있는지도 정확한 진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