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에서 공부했지.”. 그렇게 말하면 그건 이스탄불의 상류층이었다고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작품 ‘순수 박물관’에서 나오는 대사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 파리가 이스탄불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시절이다. 오스만 제국이 무너져 내리던 20세기 초반, 이 도시는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방황하고 있던 셈이다.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철도는 유럽에서 동양, 그러니까 오리엔트로 가는 길이었다.
에르퀼 푸아로 탐정이 등장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작 ‘오리엔트 특급 열차의 살인 사건’이 바로 그 철도의 이야기다. 그 특급열차의 이스탄불 종착역이 바로 시르케지역이고 이 근처 호텔에서 아가사 크리스티가 그 추리소설을 썼다고 하니 흥미롭다. 오르한 파묵은 자신의 저서 ‘이스탄불’에서 “이 도시가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도시 하나에 담겨 있는 역사가 만만치 않다. 그리스 식민지 비잔틴에서부터 시작해서 로마가 동쪽에 펼쳐낸 비잔틴 제국, 그 중심에 세계의 수도를 만들겠다면서 세운 콘스탄티노풀, 그리고 이어 이슬람의 수도가 된 이스탄불, 모두 같은 곳의 다른 이름일 뿐이나 그 이름마다 새겨진 세월과 역사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그걸 모두 그 안에 담고 지중해로 가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서 있는 이 도시는 인간에게 문명의 의미를 끊임없이 깨우치고 있다.
한때는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가 쇠락의 길을 걷고, 그러다가 다시 서구와 아시아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방황하던 이 도시는 이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보물에 눈뜨고 세계를 불러들이고 있다. 이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자산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탄불은 이제 오르한 파묵 만이 아니라 인류에게 ‘문명의 박물관’으로 자신감에 넘쳐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명의 자산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 그 도시는 살아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키우고 한 시대의 정신을 길러낸다. “이 도시가 나를 길러냈다”고 우리는 서울이나 다른 도시를 보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단지 그곳에서 자라나 살았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거리를 걸으면서, 도처의 건물을 보면서 문학, 예술이, 그리고 역사가 그 마음에 아로새겨지고 상상력이 길러져야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린 우리의 도시에 그런 걸 너무나 많이 제거해버리고 살고 있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