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탑 미나레트에서 ‘애잔’이 울린다. 이슬람 국가의 독경이다. 블루 모스크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기 저기 사원 근처에는 거리 밖에까지 짧은 양탄자를 깔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또 하나의 물결을 이룬다. 이스탄불의 한 낮 풍경이다.
금식기간 라마단은 매일 오후 8시경이면 풀린다. 히포드로모스라고 불리는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사이 광장에는 무수한 인파들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펼쳐놓고 금식종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음식 냄새가 유혹하는 식탁 앞에 앉아서 가족과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에 몰두한다. 근처에는 야시장이 붐비고 있다.
금식과 축제가 서로 어울려 있는 거리에는 종교와 세속의 역사가 공존해온 세월이 담겨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이 애초에는 비잔틴 제국의 교회였다가 1453년 이슬람의 콘스탄틴노플 공략으로 이슬람 사원이 됐고, 이후 이곳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한 집에서 기간만 달리한 채 공존한 종교예술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됐다.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융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정원에서 만난 일본의 교수단 일행은 도성(都城)비교 연구가들이었다. 좁고 깊게 파고드는 미시사 연구에 밝은 일본인들답게, 셀주크 투루크 전문가인 일본인 학자의 안내로 이스탄불에 왔다는 이들은 그 구성도 흥미로웠다. 한국, 일본, 중국의 고대사 학자들이었고 교토 대학 교수들이라고 한다. 중국 도성 연구가가 입을 연다. 7~8세기 가량에 전 세계적으로 콘스탄틴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와 같은 도시가 등장한다고.
그 이유는 유목 기마민족의 움직임이 그런 세계사적 운동에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나 역시 그에 동의하면서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바는 그런 과정을 통해 당대의 인류가 코스모폴리탄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 점이 아니겠는가라고 답한다. 아시아는 바로 그 코스모폴리탄적 경험을 서로 나누어 갖지 못한 지난 역사를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을 추가한다. 그러자 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르는 배에 몸을 싣고 이스탄불의 야경을 바라본다. 흑해에서 부는 바람은 한없이 맑고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고도(古都)는 문명의 방위를 가리키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방향을 잡고 문명의 내일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