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규 가계대출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실시했다가 여론에 밀려 철회했던 은행들이 이번에는 기존 대출 상환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금여력이 있거나 실수요가 아닌 목적으로 대출받은 고객의 대출 상환을 적극 권유하겠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또 특판 대출금리, 지점장 전결금리 등 고객 우대금리도 줄이기로 했다. 결국 기존·신규 대출자 모두에게 부담을 지우겠다는 뜻이 된다.
급증하는 가계대출이 우리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 받지 못한 서민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9일 시중은행 부행장과 실무자들을 불러모아 기존 대출의 상환을 통해 대출 증가율을 억제하고, 상환을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서민이나 실수요 대출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시중은행들은 이에 따라 대출 상환의 유도를 위한 세부계획 마련에 나섰다. 가장 먼저 검토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대출 상환을 위한 자금 여력이 있거나 실수요가 아닌 주식투자, 다주택 투자 등의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고객들이다.
시중은행들은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 고객에게 상환이 가능한지 물어본 후 자금여력이 있는 고객의 상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또 사용용도를 면밀히 따져 주식투자나 다주택 투자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면 만기연장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고객들은 당장 대출을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3년 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다음 달 거치기간이 만기가 된다는 김혜령(34)씨는 “기존 대출의 금리가 높은 편이라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려 했었다”며 “이제 낮은 금리는 커녕 자칫 1억원이 넘는 돈을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니 큰 일”이라고 우려했다.
19일 회의에서 당국은 또 특판 금리, 지점장 전결금리 등을 동원해 은행 영업점들이 대출을 늘리는 것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시중은행들은 당국의 이런 방침을 고려해 고객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은행 고객에게 낮은 대출금리를 제시해 자기 고객으로 만드는 대환대출이나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신규 입주아파트 집단대출 등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방안 역시 대출이 줄어드는 효과보다는 제2금융권으로 대출 고객이 몰려 금리부담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주 아파트 분양 계약을 체결했다는 직장인 강성호(43)씨는 “은행에서 우대금리를 적용해준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는데 주말에 이런 발표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저축은행이나 보험사 대출금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야 할 형편”이라고 불만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