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즈미르로 이름이 바뀐 스미르나는 애게해를 마주하고 있는 터키 서부의 대도시이자 항구다. 기원전 10세기 이래 이 도시는 지금까지 마찬가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지중해는 태양을 밤이면 냉큼 삼켰다가 아침이면 토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너무 뜨거워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식으로.
‘오디세이’와 ‘일리어드’의 작가 호메로스가 바로 이곳 출신이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우리는 트로이라는 마을과 만나게 된다.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을 뿐이나, 우리는 그곳에서 기원전 3000년경으로부터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지층이 겹겹이 쌓인 채 한 곳에서 고스란히 발견되는 것을 보게 된다.
호메로스는 그가 살던 시대보다 400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 이야기를 하나의 구전문학으로 완성해낸다. 기원전 12세기의 그리스 본토 동맹세력과 트로이 사이의 전사(戰史)는 그렇게 해서 인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치열하게 접전했던 바다와 성벽 사이는 이제 1000년의 시간을 두고 이루어진 하천의 퇴적으로 육지가 돼 올리브 나무와 해바라기가 심겨져 있다.
트로이 전쟁은 여자를 두고 벌인 싸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십년이 넘도록 좀체 끝이 나지 않았던 이 사건은 트로이가 구리와 철의 산지이자 이즈미르를 장악할 수 있는 거점이었다는 사실이 보다 큰 이유였다. 철기문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패권을 쥘 수 있었던 시대에 철의 산지를 확보하는 것은 결정적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트로이가 매력적인 이유는 여전히 호메로스의 이야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 뒤에 끌고 다니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 그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어느 날 밤 적장의 막사를 비밀리에 찾아든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아들의 몸을 돌려달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런 늙은 왕을 보자 고향의 노부(老父)를 떠올리고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일리어드’의 마지막 명장면이다. 흔적만 간신히 남은 성벽 위에 서서 그 막사가 어디쯤 있었을까하고 내려다본다.
폐허 위에서도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경이롭다. 우리네 마을 곳곳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그득 하건만, 우리는 그걸 도리어 폐허로 만들어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