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도종환의 최근 시집이다. 치열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그는 시골산방에 기거하면서 서울을 오간다. 자기 안에서 작동하는 시계가 가리키는 세월이 저무는 것을 그는 도리어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남아 있는 시간이 펼쳐줄 풍경을 기대하는 그의 마음이 같은 시간을 남겨 놓고 있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준다.
우리가 사는 생애를 그는 ‘막차’라는 시에서 이렇게 그린다. “오늘도 막차처럼 돌아온다…오늘도 많이 덜컹거렸다. 급제동을 걸어 충돌을 피한 골목도 있었고 아슬하슬하게 넘어온 시간도 있었다. 그 하루치의 아슬아슬함 위로 초가을 바람이 분다.” 그 막차를 못 타게 가로막고 밤을 새우며 그와 술을 마시기도 했으니 “오늘은 막차를 놓쳤다.” 뭐 그렇게 다른 시를 써도 되지 않을까하고 속으로 웃었다.
세상사 거칠어지고 속마음 제대로 나눌 길 없어져가는 황량함 앞에서 시인은 이렇게 탄식한다.
“마른바람이 모래 언덕을 끌고 대륙을 건너는 타클라마칸 그곳만 사막이 아니다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도 사막이다 저마다 마음을 두껍고 둔탁하게 바꾸고 여리고 어린 잎들도 마침내 가시가 되어 견디는 일 말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곳 그곳도 사막이다.”
그런 그는 우리가 꿈꾸며 일구어놓은 시대가 ‘지진’처럼 단숨에 무너지는 것을 아파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가 세운 세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에 새풀이 돋기 전에 벽돌을 찍고 사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 종을 울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숲과 새와 짐승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더 튼튼한 뼈대를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폐허의 가장자리에 삽질을 해야 한다…”
시집을 덮으면서 시 한 구절을 다시 읊어본다.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