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은 ‘매뉴얼(manual)’을 ‘설명서, 사용서, 안내서로 순화’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짧은 정의지만 어떤 내용이나 이유, 사용법 따위를 단순히 설명하는 차원을 떠나 자세히 소개하고 안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매뉴얼’이라고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지난 15일 전국적으로 벌어진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한가위 이후까지 이어진 무더위에 따른 전력 수요예측 실패가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무용지물인 매뉴얼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예고 없는 단전, 전력위기 매뉴얼 및 전력시장 운영규칙에 어긋난 대응을 두고 비판여론과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전력위기에 대비해 마련한 ‘전력 차단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거나, 현재의 송전선망 실정으로는 매뉴얼대로 순차적인 단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거나, 하는 등의 지적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전력거래소의 순환 정전 판단이 ‘선(先)조치-후(後)보고’였는지, ‘선(先)보고-후(後)조치’였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 주무부서인 지식경제부 사이에 원활한 보고 및 통제 매뉴얼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했으며, ‘전력 차단 매뉴얼’도 현재의 실정과 괴리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매뉴얼을 토대로 실전처럼 연습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미흡해 막상 사태가 발생하자 난맥상을 보였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대로 된 매뉴얼의 작동 여부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미치는지는 올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확연히 입증됐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사태수습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외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원전 관련 위기대응 매뉴얼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는 점이 드러나 ‘매뉴얼 일본’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혔다.
반면 일본은 초유의 원전 사고를 당했으면서도 치밀한 ‘계획 정전’으로 정전대란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위기 매뉴얼의 정상적인 작동이 어떤 선순환을 가져오는지 잘 보여줬다.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이번 기회를 국가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의 총체적인 점검기회로 삼아야 한다. 부처 간 매뉴얼이 제각각이라면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하고, 먼지만 뽀얗게 싸인 매뉴얼이라면 당장 꺼내서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지 재검토해야 한다. ‘탁상용 매뉴얼’이라면 연습을 통해 유사시에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실전용 매뉴얼’로 재정비해야 한다.
/논설위원 ryusk@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