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여름 결혼할 예정이었던 직장인 신선호(33)씨는 결혼식 날짜를 내년으로 미뤘다. 신혼살림을 차릴 전셋집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멀더라도 전셋값이 싸다는 지역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지금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고 뛰는 전셋값을 보고 있자면 내년엔 가능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전세시장에 불고 있는 광풍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 소형주택이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서며 아파트 거래량이 조금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구매할 능력이 없는 세입자들은 마땅한 전셋집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중이다. 게다가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수직 상승하고 있다.
21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전세가격이 2억원을 넘는 아파트가 100만 가구를 돌파해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2억원이 넘는 ‘고가 전셋집’은 전체 전세 물량 342만1971가구 중 32.39%에 달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고가의 전셋집은 전체 아파트의 20%에 못 미쳤지만 최근 매매시장의 침체로 전세금이 급증하면서 비중이 커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것은 전셋값뿐만이 아니다. 크게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로 전향하는 세입자들이 증가하자 월세를 올리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21일 서울지역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강서구 염창동의 한 아파트 84㎡는 7월만 해도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80만원이었으나 8월 들어 월세가 110만원으로 급등했다. 관악구 신림동 모 아파트 34㎡도 7월에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이었으나 8월에는 65만원의 시세를 형성했다.
◆대학가도 '비풀옵션' 유행
이렇게 월세가 크게 오르면서 대학가에서는 시설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집을 찾아 이사하는 ‘다운 그레이드’가 유행하고 있다. 세탁기·침대·책상·화장실 등이 갖춰진 풀옵션 원룸 대신 시설 몇 개가 빠진 ‘비풀옵션’으로 방을 옮기는 중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방을 얻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고려대 인근 풀옵션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는 대학생 박민호(22)씨는 얼마 전 학교에서 도보 20분 거리인 비풀옵션 방으로 이사했다. 책상과 침대가 없는 방이지만 월세가 30만원으로 저렴한 편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불편하긴 하지만 그나마 다른 대학가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신촌에서는 월세 60만원 이하로는 방을 구할 수도 없다고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입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으나 당분간은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월세 대란’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한동안 전세 입주물량이 많지 않아 전·월세값은 상당기간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